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명선 Jul 22. 2017

D-99. 내가 나답기 때문에 그런거였다

아직 나는 더 많이 나를 좋아해야 한다

1.

유난히 남자친구와 이야기가 잘 통하는 날이었다.

퇴사를 한 기념으로

겁나 더운 금요일 저녁, 삼계탕을 저녁으로 먹고

후식으로 카페에 앉아

두런두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2.

세 번째 회사의 마지막날은 별일없이 지나갔다.

동료들과 아침부터 근처 카페에서 여유롭게 수다를 떨다가

대표님의 갑작스런 호출에 불려간 정도의 일이 있었고

여유를 넘어 꽤나 잉여스러웠던 이번주 중에서도

특히 더 맘편히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3.

솔직히 말해 서운한 감정이 거의 들지 않았다.

같은 날에 퇴사하는 동료 A는 팀원들이 준비해준 송별회에서 한마디를 하면서 울먹이기도 하고,

정성스레 한 명 한 명에게 편지를 쓰고 센스 넘치는 선물도 준비했는데

나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다.

A의 선물과 편지를 좋아하는 팀원들을 멀찍이 바라보면서 약간의 후회가 들기도 했지만

역시 너무 귀찮은 일이라, 하지 않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4.

그렇게 카페에서 남자친구에게 A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내가 사랑하는 남자친구와 내가 너무 좋아하는 전 직장 동료 A에게 공통점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


둘 모두

만인에게 사랑받는 사람이다.

주변에 적이 딱히 없고,

쉽게 사람을 싫어하지도,

싫어해도 별로 티를 내지 않는다.


5.

관계란 매우 상호적이어서,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면 그 사람도 나를 좋아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내가 그 사람을 싫어하면 그 사람도 나를 싫어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관계의 형성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기도 하고

어떤 사건에 의해 촉발되기도 한다.


어떻게 형성되었든 사람에 대한 호감이나 비호감이 생기기 마련이고

둘 중 이 감정을 좀 더 적극적으로 티내는 사람에 의해

금세 가까워지기도, 쉽게 멀어지기도 한다.


6.

나는 관계에 있어 적극적인 사람이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쉽게 티낸다.

좋아하는 사람은 많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적당히 티를 낸다.


싫어하는 사람과 적당히 지내는 것을 10대 때는 지독히도 못했는데,

20대가 되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조금씩 둥글어졌다.


그래도 여전히

좋아하는 만큼 가까이

싫어하는 만큼 멀리

그 사람에게 자리한다.


7.

내 남자친구나 A 같은 사람은 다르다.


사람이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는 절대적 수치를 100,

50이 호감과 비호감의 기준이라고 한다면,

자기가 좋아하는 수치보다 디폴트로 모두에게 +20씩 잘해주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좋아하는 수치가 40인 사람에게도, +20을 해서 60 정도의 애정을 준다.

웬만큼 싫은 사람이 아니고서야 싫은 티를 내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 사람이 자기를 좋아한다고 생각하게 되고,

대부분의 사람이 이 사람을 좋아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렇게 만인의 연인이 되어간다.


8.

나는 평생 만인의 연인이 되어본 적이 없다.

어떤 사회 집단에 속하든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오늘 말하다보니 문득,

그 이유가 나에게 기인하는 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먼저 그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그걸 티냈기 때문에,

그 사람도 나를 좋아하지 않았던 건 아닐까.


9.

항상 '만인의 연인' 같은 사람을 부러워했고, 동경했고, 좋아했다.

그렇게 되지 못하는 내가 싫었다.


그런데 문득

'만인의 연인'이 아닌 내가 오히려 '나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나는 결국 내 선택의 결과였다.


난 모든 사람을 좋아할 수가 없다.

아니, 모든 사람을 좋아하기 싫다.


나는 호불호가 분명한 사람이니까.

나는 예민한 사람이니까.

나는 언제나 솔직하고 싶은 사람이니까.

나는 타인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는 사람이니까.


10.

어떤 삶의 방식이든 대가는 있다.

'만인의 연인'들은 그렇게 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노력한 사람들이다.


나는 그냥 나답게 사는 것을 선택하겠다.

모두에게 사랑받기 위해 위에 서술한 나의 특성을 버리고 싶지 않다.


그리고 이게 틀린 건 아니다.

잘못된 게 아니다.

모두가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게 정답이 아니었다.


바보같이, 그걸 이제야 알아버렸다.

멍청하게 그것도 모르고 그동안 나를 많이 싫어했다.

나를 버리고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그건 불가능하다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나는 그냥 만인의 연인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남겠다.


<끝>













매거진의 이전글 D-100. Prologu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