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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선 Jul 25. 2017

D-96. 코끼리와 벼룩 1

찰스 핸디, <코끼리와 벼룩>

1.

퇴사를 하기 위해 전 직장의 인사팀을 찾아갔을 때,

3년 정도 프리랜서 생활을 하셨던 분에게 추천받은 책이 있다.

<포트폴리오 인생>과 <코끼리와 벼룩>.

모두 찰스 핸디의 책이다.


2.

하나의 회사에 종속되어 전일제 근무하는 형태가 점점 사라지고,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일과 일이 아닌 것들을 복합적으로 묶어 하나의 '포트폴리오'같은 인생을 만든다는 개념이다.

(아직 나한테도 명확하게 자리잡은 개념은 아니다.)


3.

찰스 핸디는 셸 정유에서 오랜 기간 근무하다가, 런던 비즈니스 스쿨 초기 설립에 깊게 관여하는 등 경영학과 관련해 폭넓은 경험과 통찰력을 겸비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래서 그런지 <포트폴리오 인생>은 목차만 봤을 때 경영학적인 냄새가 너무 많이 나서 <코끼리와 벼룩>을 골랐는데, 이 책 역시 경영학 냄새가 매우 진하다.

솔직히 별로 재밌다는 생각은 안드는 책이다.

그래도 아직 반 정도밖에 안 읽었는데, 기억하고 싶은 문장이 많다.


4.

(...) 하지만 나는 삼엽 조직이라 부르는 약간 다른 개념의 조직을 추진하고 있었다. 삼엽 조직은 핵심적인 코어 영역, 계약적 관계의 주변부, 보조적인 노동력이라는 잎새 세 개로 이루어지는 조직이다. 나는 삼엽 조직의 개념이 거대 기업 전체를 관통하는 유연성을 제공한다고 주장했다.
- 22페이지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게 맞다면,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만 정규직으로 냅두고, 계약적 관계로 하청업체 또는 에이전시와 협력해서 일하고, 필요할 때마다 계약직으로 인력을 쓴다는 의미 같다. 기업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굉장히 이상적이라고 보이는데, 요즘 같이 비정규직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하고 있는 때에는 쉽지 않은 시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약적 관계의 주변부'에 속하는 기업들이 지금처럼 저연봉의 중소기업에 머물지 않고 대기업과 비슷한 수준의 연봉을 주면서 사람들을 정규직으로 고용한다면 어떨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약직에 머무는 사람은 분명히 존재할텐데, 이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포트폴리오 생활을 제대로 누리려면 스케줄을 마음대로 잡는 대신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선택을 하고, '아니오'라고 말할 줄 아는 단호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포트폴리오 생활을 하려면 성공의 의미를 재규정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인생과 인생의 목적에 관한 개인의 가치와 신념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스케줄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은 두 가지 선택안 중 하나를 고르는 것으로 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그 사람의 신념 체계가 드러나는 준종교적인 탐구라 할 수 있다.
- 28페이지


성공의 의미를 재규정해야 한다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성공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말로 해석된다. 현재 내 스케줄의 우선순위는 1순위가 운동, 2순위가 글쓰기, 3순위가 독서이다. 글쓰기나 독서는 몰라도 운동이 내 신념 체계를 드러내는 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요즘 급격하게 살찐 내 몸때문에 우울해지기도 하고, 남들을 볼 때 '저 사람은 좀 뚱뚱하군/날씬하군'과 같은 평가를 무의식적으로 하는 걸 보면 반영이 된 것 같기도.


자기 자신을 알려면 자기 자신이 아닌 것이 무엇인지 먼저 알아야 한다.
- 35페이지


대학 전공이나 직업을 원하는 우선순위에서 가장 높은 것이 아닌, 싫어하는 우선순위에서 가장 낮은 것을 골랐다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흔히 '소거법'이라 불리는 이 방법이 최선인지는 모르겠으나, 최악은 피하게 해준다.


그러나 포트폴리오 생활에서는 당신이 뭔가를 일으키지 않으면 아무것도 돌아가지 않는다.
- 59페이지


알고 지내는 프리랜서 캘리그라피 작가 선생님의 SNS를 보다 보면, 무지하게 아픈 날인데도 결국 몸을 끌고 수업에 나간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직장인에게는 연차가 있지만, 프리랜서에게는 계약 위반일 것이다. 프리랜서에게는 매일매일이 휴일이지만, 동시에 그 어떤 휴일도 진짜 휴일일 수 없다.


나는 연금술사들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중에 그들이 코끼리와 일하면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궁금해졌다. 그들의 정열은 주로 아이디어의 소유라는 사실엣어 비롯했다. 그들은 그 아이디어의 법적, 심리적 소유주였다. 그들의 정체성은 주로 그들의 이름을 달고 있는 프로젝트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다.
- 134페이지


이 책에서 연금술사는 무에서 유를 창조할 정도로 진취적인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코끼리는 대기업을 의미한다. 저자는 아내와 함께 반짝반짝 빛나는 개인인 연금술사가 대규모 시스템인 코끼리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취재했다고 한다. 그리고 발견한 점은 연금술사에게 세 가지 특징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열정적이며, 집요하게 매달리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제 3의 눈을 가지고 남들과는 다른 눈으로 사물을 본다.

그렇다면 그들의 정열은 어디서 오는가? 그들이 낸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그들 스스로 소유하는 데서 나온다고 한다. 쉽게 말하자면 성과를 낸 사람과 보상을 받는 사람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인재들은 코끼리같은 회사에 속하면서도 자신의 성과를 변호사 등을 통해 지킬 것이라고 한다.


연극 관람, 여행, 외식, 축구 경기 관람 등 소위 체험 경제가 오래전에 실물 경제를 앞질렀다. (...) 이렇듯 체험 경제에서는 회사들이 물건을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 경험이나 추억을 사고판다.
- 165페이지


나 역시 실질적인 물건을 구매하기보다는 새로운 경험에 돈을 좀 더 쓰는 편이다. 아직은 영화관만큼 가성비가 높은 경험이 별로 없어 보이지만, 프립이나 집밥, 위즈돔, 트레바리와 같은 모임 플랫폼의 활성화에서 체험 경제 발달의 씨앗이 보인다.


사람들은 정규 직장의 생활이 끝난 후에도 일을 계속해야 하는데 그것은 정규 직장의 연속이 아니라 이런 일, 저런 일을 그러모아 만든 '포트폴리오' 일이 될 것이다. 일은 사람들을 건강하고 유익하게 만들고 또 부모의 은퇴 생활 지원이 버거운 자녀들의 부담을 덜어준다. 어쩌면 장래의 어느 시점에 은퇴라는 말은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
- 183페이지


 '포트폴리오' 인생의 개념 자체는 참 좋은데, 분명 이 포트폴리오가 개인마다 엄청난 퀄리티 차이를 보일 것이 안타깝다. 누군가는 그동안의 전문성을 발휘해 조금 일하고 고소득을 올리면서도, 여가 생활과의 균형이 맞는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반면, 누군가는 치킨집 알바와 대리운전 알바 등 끝없는 알바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게 될 것이다. 은퇴라는 말은 사라질 것 같지만, 그게 과연 사람들을 건강하고 유익하게 만들지는 모르겠다.



*이 책의 모든 인용구는 <코끼리와 벼룩>(찰스 핸디, 모멘텀)에서 인용되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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