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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선 Jul 30. 2017

D-92. 코끼리와 벼룩 2

찰스 핸디, <코끼리와 벼룩>

1.

찰스 핸디의 <코끼리와 벼룩>은 부제로 '거대 조직에 기대지 않고 독립생활자로 단단히 살아가는 법'을 달고 있으나,

본격적으로 독립생활자를 위한 내용은 3장인 251페이지부터 시작된다.

그 전까지는 길고 긴 이 경영학 구루 아저씨의 통찰력 넘치는 자본주의에 대한 얘기를 들어야 한다.


2.


어딘가에 속하고 싶은 마음과 자유롭고 싶은 마음 사이의 갈등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벼룩은 일반적으로 기생충으로 분류된다. 유기체는 벼룩을 바라지 않고 가능한 한 벼룩을 멀리하고 싶어한다. 독립 생활은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채택할 생활방식이기는 하지만, 그들이 공동체에 자신의 시간을 적극적으로 투자하거나 연금술사들처럼 자신들이 공동체를 창조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공동체의 한 부분이 될 수 없다.
- 253페이지


매일 매일 어딘가에 출근해야 한다는 부담이 참 싫었는데, 막상 아침에 일어나 무한한 자유가 주어지는 하루가 계속되니 헛헛한 마음이 든다.

코끼리에게 이별을 고하고 단단한 벼룩이 되고 싶은데, 기생충이 되어 가족에게 들러붙는 건 아닌가 걱정도 된다.

사람이 그립지만,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와 나를 비교하게 되고, 어느 순간 초라해진 스스로를 발견하기도 한다.


3.

나 자신의 인생을 계획하려면 직감에 따른 반응 이상의 것, 그러니까 전략이 있어야 했다. 그리고 어떤 전략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그것은 사명감이나 목적의식에서 흘러나와야 한다. 목적의식이 없다면 나는 전에 만나보았던 많은 기업들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었다. 그 회사들은 그저 살아남는 것만이 목적으로 내년까지만 무사히 버티자는 생각밖에는 하지 못했다. 하지만 단지 살아남는 것은 인생의 충분한 목적이 되지 못한다.
- 255페이지


단지 살아남는 것은 인생의 충분한 목적이 아니라고 당차게 말하는 이 할아버지의 기개가 대단하다.

단지 살아남고 싶지 않으면서도, 한켠에는 그저 살아남는 것도 괜찮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사명감. 목적의식. 모두 너무 무겁다.


4.

그래서 자신의 열정을 아직 발견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조언한다. "실험을 해보라. 마음에 드는 것은 뭐든지 해보라. 하지만 그것이 하나의 열정으로 성숙할 때까지 그것을 당신 인생의 중심으로 여기지 마라. 그렇다면 그것은 오래가지 못할 테니까."
- 260페이지


이 할아버지는 "열정"이라는 단어를 굉장히 오래 지속하는 것으로 사용한다.

나같이 단기간만 뭔가에 몰두할 수 있는 사람은 차마 뭔가에 열정이 있다고 쓰기 민망하다.

아무튼 단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의미가 중요하다.

이 문장을 '하고 싶은 것은 모두 해보되, 진짜 해볼만하다, 가치있다고 여기기 전까지는 너무 빠져들지 말아라.' 정도로 해석해 본다.

그러면 그 전까지는 인생의 중심을 비워놓고 살아야 하나?

어느 정도가 되어야 하나의 열정으로 성숙했다고 볼 수 있나?


계속 생각하다보니 이렇게도 치환이 된다.

'열심히 만나라. 끌리는 사람은 누구든지 만나보라. 하지만 그것이 하나의 사랑으로 성숙할 때까지 그(녀)와 결혼하지 마라. 그렇다면 그것은 오래가지 못할 테니까."


흠, 모르겠다.


5.

오늘 오랜만에 동기들을 만나 사는 얘기를 나누다 보니 "(회사를 그만뒀다니) 그래서 앞으로 뭐할건데?"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내 대답은 "백일동안 생각없이 놀고, 결혼하고, 그 뒤는 그 후에 생각할 것"이었다.

맞으면서 틀린 대답이다.

그렇게 하려고 하지만,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이 닥쳐올 때면 미래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나를 든든하게 응원해주는 가족과 남자친구, 친구들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나의 미래는 오롯이 나의 손에 달려 있다.


찰스 핸디 할아버지가 말한대로 마음이 가는 것은 뭐든 해보면서 내 열정이 성숙하기를 기다리고 싶다.

문제는 마음이 가는 게 그리 많지 않다는 거지만.


오늘도 머리를 쥐어 뜯으면서 하루를 마감한다.



*이 글의 모든 인용구는 <코끼리와 벼룩>(찰스 핸디, 모멘텀)에서 인용되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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