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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선 Aug 06. 2017

D-85. 비밀의 숲

tvN 드라마, <비밀의 숲>

(다량의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많은 분들의 추천을 받고 최근 종영한 tvN 드라마 <비밀의 숲>을 정주행했다.

수요일에 3편을 연달아 보고,

목요일에 4편,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저녁까지 나머지 11편을 몰아보았다.

다 보고 나니 온 몸이 안 쑤신데가 없고 눈에는 다크써클이 내려앉았다.

오랜만에 뭔가 하얗게 불태운 느낌이다.


드라마는 리뷰가 어렵다.

워낙 내용이 방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 하루 정도 꿈까지 꿀 정도로 푹 빠졌다 나오니 뭐라도 안 남기면 서글퍼서 적어본다.


2.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는 이창준이었다고 생각한다.

<응답하라 1988>에서 방정맞은 학주 쌤으로 나왔던 유재명의 차장검사-검사장-청와대 수석 연기가 빛을 발했다.


반전을 품었던 인물이기도 하고,

자기 몸을 내던지면서까지 자신이 추구했던 정의를 조금이라도 실현해보려는 게 대단하면서도,

솔직히 쉽게 이해가 되지는 않는 인물이다.


황시목이 얘기했던 것처럼 '괴물'이 적확한 표현일 수 있겠다.

선악을 나누는 게 무의미한 인물.

부조리한 세상을 자신의 목숨으로 변화시키고 싶었을만큼 정의감으로 가득차 있으면서도,

평범한 사내처럼 아내에 대한 애정도 있고 개인적 영달도 추구했다.

엘리트의식과 선민의식을 토대로 한 거만함을 가졌지만,

정의라는 가치 앞에서 개똥밭에 굴러도 좋다는 이승을 등질만큼 결단력이 확고하기도 했다.


본인은 한 번의 선택의 실수가 모든 걸 바꿨다고 했지만,

과연 그럴까.

한 번 선을 넘으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것일까.


아무튼 평범한 인물은 정말 아니었다.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한 도박이었다니.

이런 반전은 일종의 반칙같다고 생각하지만, 이창준 캐릭터에서는 충분히 저지를만한 행동이기도 했다.


3.

주인공은 황시목과 한여진이었고, 두 배우의 연기도 훌륭했지만

한편으로는 두 주인공은 너무 올곧은, 초지일관적인 캐릭터여서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황시목이나 한여진이 조금이라도 흔들렸으면 어땠을까.

조금이라도 소시민적인 태도나 행동을 보였다면 어땠을까.


아마 모 아니면 도 였을 것 같다.

정말 더 흥미진진해졌거나, 기괴하게 꼬였거나.


4.

감정씬이 그리 많지 않다 보니 OST가 깔리는 씬이 많지는 않았다.

16부를 다 보고 나서 기억에 남는 음악은 김광진의 <편지>이다.


영검사가 황시목에게 옷을 빌리고 나서 옷값이라고 보내준 노래인데, 맥락상 꽤나 쌩뚱맞았다.

하지만 영검사가 이때 이미 자신의 짝사랑을 정리하려고 한 것일 수도 있고,

그냥 어두운 두 사람의 앞날을 암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
이제 나는 돌아서겠소
억지 노력으로 인연을 거슬러
괴롭히지는 않겠소
(...)
진정 행복하길 바라겠소
이 맘만 가져가오


영검사가 시목을 좋아했는지 확실치는 않지만, 많은 행동에서 드러났다고 본다.

둘이 부부가 되었으면 은근 잘 어울렸을 것 같은데, 쪼금은 아쉽다.

그래도 쓸데없는 러브라인이 없었던 게 이 드라마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한 몫 했다.


5.

디테일이 살아있는 드라마였다.

1화에서 시목이 박사장의 살인현장에 들어갔을 때 망치를 들고 일단 범인이 남아있는지 아닌지 확인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쓸데없는 말들이 거의 없었다.

모든 말과 행동은 또다른 말과 행동의 단서이자 씨앗이 된다.

사실 이건 좀 너무 딱딱 맞아떨어져서 의아한 부분이기도 하다.


주인공들이 대부분 검사, 경찰대 출신의 경찰 등 똑똑한 인물 설정인 것은 알겠으나

어떻게 그렇게 대부분의 인물이 작은 말 하나 흘려듣는 법이 없을까.

검사나 경찰이 되면 그렇게 두뇌가 흘러가려나?


또 어쩜 그렇게 다들 전화를 잘 받나?

나처럼 전화 못받는데 프로인 사람은 보면 볼수록 정말 저럴 수 있나? 싶었다.

(물론 주인공이 긴급한 상황에서 어이없게 전화를 놓치면 황당하긴 할 것이다)


6.

드라마를 보는 방법은 크게 본방 사수와 몰아뒀다 정주행이 있는 것 같다.

이렇게 범인이 궁금한 드라마는 몰아뒀다 하루에 한 편씩 본다-뭐 이런 거는 나처럼 시간많은 백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드라마 정주행은 체력적으로 정말 피곤한 방법이다.

어릴 때부터 드라마를 좋아해 종종 하루 날잡아 10편씩 막 몰아보곤 했는데,

이제는 나이가 들었는지 체력에 한계가 느껴진다.


7.

<비밀의 숲>은 재미나 완성도에 비하면 시청률이나 화제성이 화려하진 않았던 것 같다(시청률 7퍼센트).

한 번 보면 끊을 수 없을만큼 재밌었지만,

그만큼 앞에서부터 연결되는 부분이 많아 중간에 보면서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던 탓이 아니었을까.


정주행하면서도 가끔씩 정신줄 놓으면 뭔소린지 헷갈릴 정도로 이야기는 촘촘했다.

하지만 그만큼 어려웠다.


8.

세상도 쉽게 변하지 않고, 사람도 쉽게 변하지 않는다.

이창준의 마지막을 보았던 송검사도 변하지 않았고, 죽다 살아난 김가영도 별로 변하지 않았다.


정의란 무엇인가.


드라마 중에서 이창준인가 영장관이 황시목에게 질문을 던지지만 시목의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법 앞에 모두가 평등하면 정의로운 사회인가?


잘 모르겠다.


9.

김영하는 <말하다>에서 소설이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우리의 삶에 작용"한다고 했다.

비단 소설뿐 아니라 모든 이야기가 그렇다고 생각한다.

볼 때나 읽을 때는 재미를 일차적으로 추구하지만, 어느 순간 그 속의 가치관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 드라마 역시 어떤 면에서는 결국 비정상적으로 정의로운 인물이 영웅처럼 정의를 구현한다-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것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함부로 해피엔딩을 버려서는 안된다.

염세주의자가 되기보다 낙관주의자로 남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다.


이 정의에 대한 이야기가,

그래도 결국은 정의가 어느 정도 승리하는 이 이야기가,

더 많은 사람의 삶에 의식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작용해서

이 세상이 조금이라도 정의로워지길 바랄 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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