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명선 Aug 10. 2017

D-80. 행동하는 사람

멋진 녀석들

1.

수영을 위해 월/수/금은 주로 수원에 있고, 화/목에 서울에 간다.

청첩장을 주기 위해 열심히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처음에는 이렇게 계속해서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을 만나자니 백수가 된 내가 초라한 느낌도 들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익숙해져 간다.


이미 알고 있던 사람들이지만, 사람 여행을 하는 기분이다.

다들 참 각양각색으로 살고 있다.


오늘은 점심 저녁 모두 27살의 여자 후배 둘을 만났다.

1년의 차이로 한국에서는 영원히 친구가 되지 못할 녀석들.

만난 세월이 얼마인데 아직까지도 존댓말을 쓰는 녀석들.

그리고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 치열하게 애쓰는 녀석들.


2.

점심에 만난 후배 B는 올해 초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원에 입학했다.

본인 입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배우는 게 무척 즐거워보였다.

나한테도 대학원에 오라고 자신있게 권할 정도였으니.


부모님이 해외에 사셔서 오늘 출국하는데, 괜히 뽐뿌를 받아서 다다음주에 라오스를 가기로 마음먹었다.

처음에는 '그냥 알아나 볼까...'하는 정도였는데, 행동력있는 친구를 만나서 그런지

오랜만에 나의 추진력이 발휘되며 비행기표도 끊고 숙소도 예약하는 등 척척 준비하고 있다.


3.

저녁에 만난 후배 D는 최근 창업을 했다.

1년 전에 만날 때만 해도 '이런 걸 해보고 싶다' 정도였는데, 딱 그 아이디어를 현실화시키고 있었다.

옛날부터 참 멋있다고 생각한 녀석이라 대놓고 멋지다고 추앙해주고 있는데,

막상 자기는 그 1년 전부터 최근에 제대로 시작하기까지 정말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남들은 결과만 보니까 항상 확신에 차있는 사람으로 볼 수도 있지만, 자기도 정말 많이 불안했단다.


D의 사업 아이템은 월경과 관련된 것이다. 이를 위해 D가 얼마나 철저히 리서치했는지, 탐폰, 생리컵, 면생리대 등 급진적(?) 생리대에 대한 정보부터 생리에 대한 역사와 사회적 담론 등에 대해 즉석에서 강연을 할 정도였다.(본인은 그냥 아는 걸 말하는 것이었지만, 나에게는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흥미로운 정보가 귀에 쏙쏙 박히는 명강의처럼 들렸다.)

멋진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나도 내 관심분야인 우울증에 대해 더 많이 파고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생각을 실천에 옮기고자 집에 와서 학술검색을 이리 저리 해봤는데, 생각보다 흥미로운 논문이 많지는 않았다. (내 검색력의 한계인 걸수도)

일단 관련 도서를 좀 더 열심히 읽으면서 참고 자료를 찾아봐야겠다.


4.

오늘 만난 두 명의 공통점은 행동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퇴사를 한다, 한다 하면서도 영원히 회사를 다닐 것 같은 사람도 있고

좋은 아이디어는 많지만 언제나 아이디어에 그치는 사람도 있다.


유지도 어려운 일이지만, 변화 역시 어려운 일이다.

위로가 되었던 점은 두 친구 모두 뭔가 엄청난 확신이 있어서 시작한 건 아니라는 점이다.

둘 다 고민도 하고, 갈등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이라고 생각한 방향으로 행동했다.


행동은 말보다 멋지다.


5.

오늘 스스로 이런 말을 했다.

적어도 100일 동안은 어느 정도 확신이 생기지 않는 일에는 쉽게 움직이지 않겠다고.

그렇지만 확신이 생길지 확신이 없다고.


6.

다시 생각해보니 내게 필요한 건 확신이 아니다.

희미한 등대 불빛이다.

저기가 맞는 방향일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어쨌든 한 번은 가고 싶은 등대 불빛.


지금 내 주변은 온통 깜깜하다.

어느 방향으로 가도 섬에 닿긴 하겠지만, 그러느니 차라리 멈춰 있고 싶다.


7.

예전 팀장님이 이런 얘기를 했다.

똥을 싸도 경험이라고.

흔히들 뭔가를 하기만 하면 좋은 경험이 되었다고 하는 말을 살짝 비꼰 것이다.


잡스가 connecting the dot을 얘기했고, 실제로 어떤 경험이 어떻게 연결될지는 모르는 것이지만.

모든 경험이 다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내가 왜 이걸 하는지, 내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

그걸 모르고 무작정 뛰기만 하면 안 뛰느니만 못할 수 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어제의 글에서 인용했던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 대로"와 모순된다.

성실한 하루하루에도 나름의 방향성이 필요하다고 하면 좀 덜 모순일까?


때로는 게으른 하루도 분명 필요하다.

숨을 고르고, 짧든 길든 방향을 살펴보고 고민할 시간이 필요하다.


<끝>



 




매거진의 이전글 D-81. 전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