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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선 Aug 16. 2017

D-75. 돈을 쓰다

결혼 준비는 끊임없는 소비의 과정이다

1.

백수가 되고 나서 휴일이 평일보다 바쁜 것 같다.

평일에는 나만 쉬지만, 휴일에는 다른 사람들도 쉬기 때문에 만나서 뭔가를 같이 해야 한다.

내일이 엄마 생신이셔서 오늘 가족끼리 모여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종로에 가서 논쟁 끝에 하기로 한 예물 보석을 맞추고,

저녁에는 면세점에 가서 또다른 예물인 명품 가방을 샀다.

집에 와서는 세탁기와 밥솥을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2.

그 전에도 결혼 준비 과정마다 돈을 내곤 했지만, 대체로 뭔가를 예약하는 - 스냅 업체, 신혼여행 비행기 등 - 경우가 많았다.

본격적으로 집을 준비하고 그에 필요한 가전, 가구, 기타 세간살이를 준비하면서부터는 구체적인 물건을 보고 구매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러다보니 훨씬 소비가 많아진다는 느낌이 든다.

끊임없이 뭔가를 사고, 사고, 사는데

여전히 사야할 게 남아있다.


게중에는 꼭 필요한 것들도 있지만, 예물처럼 '이렇게 큰 돈 들여 사는게 맞나?'라는 생각이 드는 것들도 있다.

오늘 쓴 돈만 합쳐도, 내가 직장인 시절 받았던 한두달치 월급에 준하기 때문이다.


큰 돈일수록, 현금을 쓰기보다는 신용카드나 계좌이체 방식으로 지불하기 때문에 더욱 큰 돈을 쓰는 느낌이 안든다.

카드를 긁는 시간은 단 몇 초뿐이다.

그 돈을 모으는 데 걸리는 시간은 수십만 초겠지만.


3.

뭐, 어차피 나갈 돈 사실 편하게 지불하면 좋다고 생각한다.

진짜 문제는 결혼 준비 과정이 그저 소비 행위로 전락하는 것에 있다.


사야 할 것들을 상세하게 리스트업하고

하나씩 해치우듯 구매해나간다.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중간중간 돌아보면서 결혼의 이유나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지속적으로 고민하는 예비 부부가 얼마나 될까?


출발을 하고 나면, 뒤돌아보지 않고 달려가야 하는 달리기 같은 결혼 준비 과정이 좀 아쉽다.

그 달리기 과정에서 허들을 하나 넘을 때마다 돈을 써야 한다는 건 많이 아쉽다.


4.

예전에 친구가 '결혼식 하루를 위해 많은 돈을 쓰는 게 아깝지 않아?'라고 물어봤다.

그때의 내 대답은 '아니!'였다.

왜냐하면 실제로 결혼식 하루만을 위해 드는 비용은 크지 않으니까.(물론 사람마다 다르다)

큰 돈이 드는 부분은 집 장만을 비롯해 결혼식 이후의 삶을 위한 준비이다.

결혼이라는 통과의례에 포함되어 있는 과정(예단, 예물 등)을 위한 비용도 꽤 되긴 하지만.


결혼식은 정말이지 결혼이라는 빙산의 아주 일부분이라는 걸, 내가 결혼 준비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5.

분명 세상에는 결혼 준비를 소비 행위뿐만 아니라 다른 알찬 시간으로 채우는 예비 부부도 있을 것이다.

쓰다보니 생각났는데, 예전에 어떤 분이 종교의 행사 등을 통해 결혼의 의미, 서로에 대한 생각을 성찰해보는 시간을 가졌다는 후기를 SNS에서 본 것도 같다.


뭐, 아쉬우면 나도 하면 된다.

한때 워크샵 기획했던 경험을 살려 둘만을 위한 결혼 전 회고 워크샵을 한 번 만들어봐도 재밌겠다.


6.

백일의 백수 생활도 어느덧 1/4 지점을 지났다.

초기 기획(?)때는 1순위가 운동이었고 결혼준비는 겨우 5순위밖에 안되었는데.

막상 살아보니 운동은 돈내고 하는 수영 말고는 점점 우선순위가 하락하고 있고,

결혼 준비는 안하면 안되는 것들이니 우선순위가 점점 올라간다.


역시, 결혼 준비가 마냥 만만하진 않나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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