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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선 Aug 16. 2017

D-74. 미안해

엄마가 말했다

1.

오전 열시.

머리가 좀 아프다.

아까 7시쯤 일어나서 꽤 많이 울다가 다시 자서 그렇다.


2.

부모님이 이틀 전 싸웠다.

표면적 이유는 너무 사소해서 쓰기도 민망하다.

하지만 본질적 이유는 엄마는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했고, 아빠는 자신이 무시당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3.

남자친구의 관찰에 따르면, 평소에 보기에는 우리집 권력자는 엄마 같다고 한다.

그렇지만 우리집 사람들은 모두 안다.

진짜 권력자는 아빠다.

아빠가 화나면, 게임 끝. 디 엔드.

평소 당당하게 말 잘하던 엄마는 죄인모드가 되어 끊임없이 사과를 해야 한다.


4.

언젠가부터 이상한 패턴이 생겼다.

엄마는 아빠가 화를 내기 전에는 자기 고집을 꺾지 않으셨고, 결국 아빠는 폭발을 하고 마는.

어릴 때는 화내는 아빠에게만 전적으로 잘못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크고 보니 엄마에게도 잘못은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의 화내는 방식은 가족 모두에게 상처를 준다.

특히, 예민한 내가 가장 많이 상처를 받는 것 같다.


아주 드문 경우를 빼고는 아빠가 진짜 폭력을 가한 적은 없다.

하지만 물건을 던지거나, 심한 폭언을 하는 경우가 있어서 듣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쫙-미친다.


5.

엄마는 아빠가 화나셨을 때 나와 오빠를 방패로 내세우고 우리 뒤에 숨곤 하셨다.

이번에도 그랬다.

싸움이 시작되었을 때, 나는 문을 닫았다.

별로 관여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가 내 방에 들어왔고, 나는 둘 사이에 껴서 결국은 아빠를 중재하는 말을 해야 했다.

아빠를 이해한다고, 엄마가 잘못했다고.


예전에는 아빠 왜 그러시냐, 진정하라는 식의 말을 먼저 했는데 언젠가부터 그게 아빠 화를 더 돋운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식의 말은 아빠의 화를 정당화하지 않으니까.

아빠도 사람인데, 본인이 나쁜 사람이 된 느낌을 받고 싶지 않을 것이니까.


6.

나는 또 한 번 엄마의 방패가 된 것에 대해 진절머리가 났다.

스물여덟이나 먹고도 여전히 아빠가 화내는 건 무섭고, 상처가 되고, 스트레스 받는다.

지금의 나도 이런데, 어릴 때의 나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괜시리 가엾다.


7.

그래서 아침에 엄마한테 좀 따졌다.

나를 그만 좀 방패로 쓰라고.


엄마는 그럼 어떡하냐고 하신다.

아빠는 거의 때릴 기세로 다가오는데, 자기가 어떡하냐고 하신다.

내가 좀 도와주는 게 당연하다고 하신다.


솔직히 엄마가 좀 더 강하고 현명해서, 부부싸움은 부부 선에서 끝냈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엄마 말도 맞다.

강건너 불구경하듯이 보는 것도 맞지는 않는 것 같다.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 호불호의 문제에서는 여전히 싫지만.


내가 생각하는 엄마의 잘못을 이것저것 얘기해본다.

대부분 엄마가 자기 생각을 타인에게 강요하고, 고집을 피워서 생기는 문제인데,

엄마의 대답은 '그래도 싫은 걸 어떡해. 너무 싫어'


이야기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오는데 엄마가 분명히 말씀하신다.

미안해


나도 미안하다고 말씀드렸다.

기꺼이 엄마를 도와주는 딸이 못되어서.

곧 이 집을 떠날 딸이어서.

내심 그게 기쁜 딸이어서.


그리고 오늘 엄마 생일인데,

미역국 끓여주지는 못할 망정,

엄마 잘못이나 조목조목 따지는 딸이어서.


미안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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