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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선 Aug 17. 2017

D-73. 결핍이 사랑을 부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해주는 사람

1.

요즘 사람들을 만나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내가 왜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는지/왜 이 사람인지에 대해 대답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곤 한다.

두 가지 질문은 같은 대답일 수도 있지만, 다른 면도 있다.

이 사람이어서 결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도 있지만,

결혼이라는 걸 하고 싶었던 다른 이유도 있었다.


왜 이 사람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이렇게 대답한다.

내 우울증을 받아들여준 사람이었으니까-라고.


2.

남자친구는 좋은 사람이다.

착하고, 재미있다.

대기업에 다녀서 돈도 잘 번다.


하지만 그냥 좋은 사람이었으면 결혼을 쉽게 결정하진 못했을 거다.


나는 이 사람이 필요하다.

내가 가장 약하고 외로울 때 위로가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어서.


바꿔 말하면 내가 약하고 외로울 때가 있으니까 이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다.

더 냉정하게 말하자면, 내 우울증이 누군가를 필요하게 만들었고, 이 사람이 가장 적합한 사람이었다.


3.

오늘 만난 아는 오빠 K는 부모님이 안계시다.

아버지는 중학교 때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최근에 돌아가셨다.

그 자체로도 괴로움이었지만, 괴로움을 넘어 일종의 치명적 결점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한동안 여자를 만나고 싶은 마음도 없었지만, 막상 만나고 나면 언제 이 이야기를 해야 할지, 입이 잘 안 떨어졌다.


그런데 최근 만나게 된 여자친구분한테는 이 사실을 털어놨고, 선뜻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심지어 그녀의 어머니까지 만났는데 그분도 이를 흠 잡지 않았다.

K는 이 사실이 자신이 여자친구를 사랑하는 원동력이 된다고 했다.


4.

사실 난 K가 부모님의 부재를 왜 그렇게까지 결점으로 여기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요즘같이 시월드에 치를 떠는 여자들이 많은 시대에, 오히려 좋아하는 여자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렇지만 내가 그 상황이 되어보지 않는 이상 모르는 일이다.

내 우울증 역시 누가 보기에는 그냥 대수롭지 않은 일일 수 있는 것처럼.


K가 현재의 여자친구한테 느낀 고마움과 사랑은 단번에 이해되었다.

나도 그런 마음이니까.

나조차 어찌할 수 없는 나의 결점을 누군가에게 이해받는 기적.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의 존재는 엄청나다.


5.

우울증이 없었더라도, 지금 내 곁에 있는 이 사람이 이렇게 보석같은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을까?

내가 가진 가장 큰 결핍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랑을 불러줬다.


젠장, 우울증한테 고마워하는 날이 오다니.

세상은 요지경.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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