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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선 Aug 21. 2017

D-69. 공항

후우

1.

며칠 전부터 오늘의 소재는 공항으로 하려고 했었다.

그리고 아마도 첫 번째 줄은 '공항은 설렘의 공간이다'가 될 거라 예상했다.

아니었다.

공항은 긴장의 공간이다.


2.

저녁 6시 비행기로 라오스 비엔티안에 간다.

원래 사는 수원에서는 인천공항까지 한시간이면 가는데,

서울에서 점심을 먹고 버스를 타니 거의 두 시간 가까이 걸린다.

공항에 4시 20분쯤 도착.

짐 부치니 4시 50분.

면세품 찾으니 5시 5분.

셔틀 트레인 타고 게이트가 있는 탑승동에 오니 5시 15분.

저가항공이기 때문에 5시간이 넘는 비행시간 동안 먹을 걸 안줄 것을 걱정해 빵을 사니 5시 18분.

종종걸음으로 도착하니 5시 22분.


다행히 아직 탑승이 시작되지 않은 것을 보고

여유롭게 화장실을 다녀와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래도 긴장의 기운은 가시지 않았지만.


3.

기차는 몇 번 놓쳐본적 있지만 아직까지 비행기를 놓쳐본 적은 없다.

그래도 항상 떨린다.

예상치 못한 과정들이 잘 생기기 때문에.


4.

처음 가보는 나라에 혼자 가는게 얼마만인지.

최근 순으로 따져보면 오키나와, 후쿠오카는 남자친구와 다녀왔고

10일이 넘었던 중국 여행은 공항에서부터 친구가 마중나와 있었다.

출장은 동료들과 함께였고.

대만에도 친구가 공항에 나와 있었고.


내 기억이 맞다면 2011년 유럽 여행 이후로

현지에 아는 사람 한 명 없이,

동행도 없이,

혼자 여행하는 건 처음이다.


5.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캐리어 지퍼가 고장나서 이제 자물쇠 기능을 못 쓰게 되었는데 뭔가 도둑맞으면 어떡하지.

혹시 캐리어 지퍼가 고장난 게 가지 말라는 계시였는데 못 알아들은 거면 어떡하지.

3박 5일동안 외롭고 쓸쓸하게 말 한마디 안하다가 돌아오면 어떡하지.

길거리 음식 잘못 먹고 뇌수막염 걸리면 어떡하지.


6.

패기 넘치게 유럽과 중국을 혼자 누비던 20대 초반의 나는 어디갔나.

언제 이렇게 쫄보가 되었나.


비행기가 이륙하려 한다.

으악!!!!!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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