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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선 Aug 23. 2017

D-68. 라오스에서 생긴 일 - 1

별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1.

어제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에 도착해 택시를 타고 숙소로 오니 밤 10시가 다 되었다.

이미 시간이 늦었고, 숙소 근처에 별게 없어 씻고 바로 잤다.

아침에 일어나 부지런히 움직여서 심카드를 사고 환전을 했다.

숙소에서 주는 조식을 간단하게 먹고 방비엥행 미니버스에 몸을 실었다.


2.

비엔티안에서 방비엥까지 미니버스로 꼬박 4시간이 걸렸다.

정말 멀기보다는 라오스의 도로 사정이 별로 안 좋아서 시간이 더 걸리는 듯하다.

도로에 중앙선이 없는 게 충격이었고, 같이 탄 한국인이 '반포장도로'라고 비꼬을 만큼, 도로 중간에 웅덩이나 구덩이가 참 많았다.


3.

'꽃보다 청춘'의 방영 이후부터 라오스는 본인들이 청춘이라고 생각하는 한국인에게 동남아에서 가볼만한 나라로 최우선순위에 꼽히는 듯하다.

나 역시 방송과 더불어, 주변에 라오스를 다녀온 친구가 너무 많았던 것이 이번 여행을 태국도, 캄보디아도 아닌 여기로 결정하는 데 주요한 영향을 미쳤다.


방송에서는 워낙 라오스의 아름다운 면, 좋은 면만 보였던 것 같은데 실제로 와서 보니 라오스가 빈국이라는 게 실감이 난다.

수도인 비엔티안을 제대로 둘러본 것은 아니지만, 숙소 주변과 방비엥까지 오는 길에 본 것만 해도 한 나라의 수도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발전이 더디다.

6년 전에 베트남의 호치민과 하노이를 다녀왔는데, 비슷할 거라 생각했던 건 엄청난 착각이었다.


어떤 나라를 경제 수준만으로 평가하는 게 매우 위험하고 생각하는 동시에, 새삼 경제가 중요하긴 하구나-라는 생각도 든다.

흙먼지 날리는 도로 주변에 어린 소녀들이 낡아빠진 솥과 함께 단촐하게 앉아 죽같은 걸 파는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지나치게 많은 교육에 노출된 한국 어린이들도 행복하지만은 않겠지만, 어린 나이부터 노동해야 하는 환경에 있는 건 분명 슬픈 일이다.


4.

6년 전 베트남에 갔던 이유는 봉사활동 때문이었는데, 낮에는 열심히 봉사하고 밤에는 열심히 시내를 쏘다니며 놀았다.

길거리 음식도 마음껏 사먹었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내가 위생 수준이 낮은 음식이나 환경에 강할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뇌수막염에 걸려 병원 신세를 졌다.

휴식을 제대로 취하지 않아 면역력이 낮아진 영향 때문인지, 길거리 음식 때문인지 아직도 원인은 불분명하다.  


정확한 원인은 아니지만, 주변에서 하도 비위생적인 음식 때문이라는 말을 많이 해서 이후로는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조리된 음식은 피하게 되었다.

오늘도 방비엥으로 오는 휴게소에서 파는 꼬치 음식을 꽤 먹고 싶었지만 참았다.


경험이 많아질수록 두려움이 더 커지는 건 아이러니한걸까, 너무 당연한걸까.


5.

방비엥에 도착하니 이것이 진정한 라오스의 날씨다!라고 말해주는 것처럼 날씨가 푹푹 쪘다.

버스 하차 장소에서 숙소까지 캐리어를 끌고 걸어간 15분이 얼마나 길었던지.


방비엥은 수상 액티비티의 천국이자, 수상 액티비티 아니면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는 도시다.

그러다보니 대부분의 관광객이 아침에 이미 액티비티를 하러 쫙 빠져나가 버리고, 현지 상인들도 뙤약볕 아래에서는 장사할 기운도 없는지 보이지 않는다.

일시적으로 방비엥이 유령도시가 되는 순간이 있는 듯하다.


6.

시크릿 라군에서 수영하고, 툭툭도 타보고(디스코 팡팡을 타는 줄 알았다), 삼겹살 샤브샤브를 먹고, 마사지도 받았다.

원화로 계산하기는 너무나 헷갈리지만, 계산하고 보면 결국 몇천원 안하는 저렴한 물가를 맘껏 누렸다.


단기 여행의 호사는 용감한 돈씀씀이에 있는 듯하다.

여기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나 저렴했던 중국 여행을 할 때는 나도 현지인 마인드가 되어서 한국돈 천원도 안되는 돈에 엄청 신경쓰면서 확인하고, 깎고 했는데 라오스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일단 중국만큼 흥정 문화가 그렇게 발달해 있지 않고 정가가 많아서 편한 점도 있었지만, 이제는 몇백원보다는 내 여유가 더 중요시하게 되었나보다.


7.

오랜만에 여행을 오니 이전의 여행들이 새삼 생각이 많이 난다.

달라진 나도 많이 느낀다.


나는 여러모로 두려움이 많아졌지만,

돈에 대해서는 좀 더 관대해졌다.

언제나 최고의 결정을 내릴 수 없다는 걸 알고, 지금 이 순간 최선의 선택을 내린 것에 만족하게 되었다.

모든 게 흥미롭지는 않지만, 여전히 낯선 환경을 관찰하는 건 재밌다.

영어를 써서 의사소통하는 게 예전만큼 재밌지 않다.

머리를 1도 안써도 의사소통할 수 있는 한국어로 얘기하는 게 더 좋아졌다.


막상 적고 나니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늙었다는 것 같다.

에잇.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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