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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선 Aug 23. 2017

D-67. 라오스에서 생긴 일 - 2

내가 여자인게 원망스러웠던

1.

짧은 라오스 여행의(3박 5일. 자유여행으로 온 사람 중에 나처럼 짧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장거리 이동 없는 유일한 날이 밝았다.

어제의 장거리 이동과 시크릿라군에서의 수영, 그 후로도 이어진 저녁 방비엥 나들이로 몸은 피곤했지만 잠은 쉽게 들지 않았다.

그냥 누워나 있자는 생각으로 눈을 감고 있다보니 언젠가는 잠이 들었나보다.

아침이 되니 잠이 쏟아졌는데 어제 신청해둔 액티비티 집결 시간이 8시 40분이라 졸린 눈을 비비며 부지런히 짐을 싸서 집결지로 이동했다.


2.

내가 신청한 액티비티 패키지는 짚라인-카약킹-블루라군이었다.

우리나라 돈으로 약 3만원(21만낍)으로 아침부터 오후까지 놀고 점심까지 주는 실로 실한 액티비티였다.


문제는 내가 높은 곳이 무섭고 힘든 것이 싫은, 늙어가는 청춘이라는 점과,

물 관련 액티비티가 주요한 방비엥에 오면서 생리예정일 따위는 가볍게 무시한 여성이라는 점이었다.


첫 번째 문제는 짚라인을 별로 즐기지 못하게 만들었다.

산을 올라가서 곳곳에 연결되어 있는 줄을 타고 내려오는, 혹자에 의하면 "하늘을 나는듯한" 액티비티인데, 나에게는 높은 곳의 공포와 산 올라가는 힘듦이 더 크게 기억된다.

물론 한 번쯤은 해볼만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재미는 짧고, 기다림은 길고, 수고는 많았다.

굳이 다시 해보고 싶지는 않았다.


3.

두 번째 문제이자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수난은 생리였다.

알고 있었다. 이 시기에 생리를 할 줄은.

근데 그걸 비행기표와 숙소 등 모든 것을 정한 다음에야 '헉' 하면서 알아버렸고,

알면서도 생리예정일을 미루는 피임약이나 액티비티 활동에 적합한 생리대 탐폰은 부작용이 무서워서 결국 시도하지 않았다.


내 계획은 물에 젖을 일이 없을 거라고 예상한 짚라인과 카약킹은 하고, 블루 라군은 가서 발 정도만 담그면서 그림을 그리는 거였다.


짚라인까지는 할만했다.

컨디션이 평소만큼 좋지는 않고, 신경은 쓰였지만 할만은 했다.


그런데 카약킹은 내 예상과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나만 조심하면 물 한방울 젖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현지 가이드들이 일부러 물을 뿌려댔다.

한국인들한테는 생리중이라고 설명이나 할 수 있지, 라오스 남자 가이드들에게 생리를 어떤 식으로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난 할 수 있는 온갖 저항을 (말로만) 해봤지만 그래봤자 물은 끼얹어질 뿐이었다.

그 뒤의 자세한 설명은 너무 구구절절하니 생략한다.

그 찝찝함과 내가 앉아있는 자리에 붉은 물이 고이는 경험은 당해본 자만이 그 참혹스러운 당혹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궁시렁대면서 어떻게 블루라군까지 가서 버티나... 걱정했는데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카약킹이 끝나는 지점이 숙소에서 걸어서 10분 거리라는 점이었다.


나는 과감히 블루 라군을 버리고, 아프다는 양해를 구한 뒤 번개같이 숙소에 돌아와 씻고 뽀송뽀송한 상태로 돌아왔다.


4.

빨래까지 깔끔하게 끝내고 음악을 들으면서 좀 쉬니 오후 3시가 다 되어갔다.

블루라군을 간 사람들은 5시나 넘어서야 돌아올 것이기에, 혼자서 쏨강을 해먹에 누워서 볼 수 있는 바에 놀러갔다.

나처럼 카약킹을 하는 사람이 끊임없이 내려왔고, 드물게 튜빙(튜브를 타고 강을 따라 내려오는 것)을 하는 사람도 보였다.


블루라군에서 못 그린 그림을 여기서라도 그려보려고 바리바리 싸들고 갔으나, 막상 해먹에 누우니 그림그리기처럼 적극적인 행동은 할 의욕이 들지 않았다.

흔들흔들 거리면서 그림같은 풍경이나 바라보면서 적극적으로 멍을 때리거나 브런치에서 라오스 글을 찾아서 봤다.


여행을 가기 전에 찾아보는 여행기가 정보 수집 목적이 강하다면,

여행 후에 찾아보는 여행기는 공감의 목적이 강하다.


방비엥에서 갈만한 장소나 할만한 경험이 대부분 거기서 거기라, 큭큭대면서 재밌게 읽었다.

내가 못해본 튜빙이나 버기카 경험에 대해서는 궁금함이 생기기도 했다.

오후에 남자친구에게 '라오스에 다시 올 일은 없을 것 같아'라고 했는데, 열심히 남의 여행기를 보다보니 '한 번 더 올까?'라는 생각도 든다.


극히 낮은 가능성으로 보이지만(탐험가 기질이 강해서 한 번 간 곳은 웬만하면 다시 가지 않는다)

절대 생리할 일 없는 시기에,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

다시 와보고 싶기도 하다.


5.

이제 방비엥의 해가 슬슬 저물어간다.

남은 저녁에는 뭘 하게 될까?

어제처럼 저녁 먹고 마사지 받고 끝날 가능성이 높지만,

오늘은 사쿠라바에 가서 제대로 흔들어볼까... 하는 생각도 든다.


서둘러 나가면 석양을 볼 수도 있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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