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명선 Aug 24. 2017

D-66. 악몽

1.

악몽을 꿨다.

무지 지독하게.


에어컨을 신나게 틀어놓고 이불을 꼭 덮고 자고 있었는데 온몸이 흥건해졌다.


시간을 보니 7시도 안된 시간이었다.

어둠 속에서 멍하니 있다가 누군가라도 필요해서 남자친구에게 보이스톡을 걸었다.

그는 아직 깊게 자고 있을 시간이다.

받지 않았다.


그래도 누군가 맘놓고 전화할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서 위안을 받는다.


조금이라도 사람의 온기를 느끼고 싶어서

SNS라도 보았다.


2.

어제는 사쿠라바에서 밤 열한시가 넘는 시간까지 놀았다.

칵테일 두 잔과 맥주 한 잔을 마셨다.

막상 클럽에서는 그렇게 안 취하더만, 숙취는 심하다.

속이 쓰리고, 머리가 아프다.


3.

라오스에 있으면서 우울증 약을 먹지 않았다.

그냥, 먹고 싶지 않아서.


3일째 약을 먹지 않았고, 대신 술을 마셨다.

이렇게 끔찍한 기분을 느낄 줄 알았다면.


4.

내용 자체를 서술하라고 하면 그냥 개꿈일 수 있지만,

결국 본질은 알 수 없는 시점의 내가, 가고 싶었던 대학에 가지 못하고, 몹시 괴로워한다는 것이다.

대학에도 못갔는데, 막상 꿈에 종종 등장하던 아는 사람들은 대학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내가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실망시켰고,

추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추한 모습을 보였다.


5.

실제의 나는 원하는 대학에 무사히 입학했고, 졸업했다.

그 대학에는 대단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지금도 대단하다.


이렇게 쓰고 나니 나는 스스로를 그렇게 인식하지 않는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나에게 나는, 결국 작고 볼품없는 존재인걸까.


6.

울어도 울어도 내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순간이다.

이런 상황에서 글을 쓰는 건 감정을 증폭하는 역할을 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굳이 피하고 싶지는 않다.


7.

아무래도 대학을 잘못 갔다.

이 대학의 존재는 앞으로도 엄청난 노력이 있지 않는한은,

내가 스스로를 인식하고, 타인을 바라보는 데 엄청난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리고 그 영향은 나처럼 마이너 웨이를 가려는 사람한테는 끊임없이 싸워내야 할 영향이다.


따지고 보면, 그냥 고등학교 때 공부를 잘했다는 걸 증명하는 것에 불과한데.

머리로는 알아도, 이미 이러한 사고방식에는 8차선 고속도로가 뚫려있다.


상담 치료를 할 때 선생님이 새로운 생각의 길을 내보라고 했다.

신선한 개념이었지만, 실천하기는 겁나 어렵다.

사람이 바뀌려면 몇 억 개의 뉴런이 가던 길을 바꿔야 한다고 하는데,

내가 그런 걸 할 수 있을리 없지.


8.

힘이 든다.

슬픔이

나를

데려가려 하고 있다.


9.

그만해야겠다.

나가서 해장이나 하고 와야지.


<끝>





매거진의 이전글 D-67. 라오스에서 생긴 일 -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