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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선 Aug 25. 2017

D-65. 후배 K에게 보내는 편지

너의 결정에 아주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1.

군대 전역이 반년쯤 남은 남자 후배에게 페이스북 메시지를 받았다.


- 현재 상황은 전역하고 나서 취업 전선에 뛰어들 예정

- 그런데 아직 세상에 하고 싶은 게 많고, 그 일들은 20대 아니면 못할 것 같은 것들

- 직장에 들어가면 도중에 그만두지 말고 쭉 커리어를 이어나가는 게 회사에도 자신한테도 맞는 것 같음

- 맘이 기우는 쪽은 하고 싶은 것들 하면서 세상공부 하다가 맘 잡으면 정착하고 인생계획 쌓는 것

- 그런데 아는 분이랑 상담해보았더니 칼같이 취업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일해서 큰돈 만져보면 마음이 달라질 거라고 해주심(갈등의 계기)


나한테 물어보는 이유는

- 여러 번 직장 생활을 해봐서


질문을 요약하자면

- 전역 및 졸업 후 바로 취업하는 게 나을지 vs 20대가 아니면 못할 것 같은 것들을 먼저 하고 나중에 취업하는 게 나을지


2.

처음 메시지를 받고는 '재밌는 질문이네' 정도로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어려운 질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내가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인가?'라는 생각이 가장 많이 든다.

여러 번 직장 생활을 해보긴 했지만, 이 요소가 질문과 얼마나 관련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최선의 대답을 구하려면

1) 똑같이 하고 싶은게 많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취업을 택한 사람과

2) 칼취업 대신 하고 싶은 걸 먼저 선택한 사람을 찾아

두 사람의 경험을 들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후배가 처한 상황과 비슷한 상황에서 2)를 택한 사람을 찾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나는 1)도 2)도 아닌 것 같아 내 대답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실제로 얼굴본지 꽤 오래 된 나한테까지 메시지를 보낼 정도면

꽤 답답한 마음이겠다 싶어 뭐라도 좀 적어본다.


편지니까 편지체로.


3.

K야 안녕?

일단 내가 너의 상황이었을 때를 생각해보자면, 나는 너랑 하고 싶은 게 달랐어.

그때의 나는 너처럼 다채로운 세상 경험을 하고 싶다기 보다는, UX라는 분야에 빠져서 어떻게든 이 분야를 더 알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던 것 같아.

그래서 내 고민 방향은 회사를 가느냐, 대학원을 가느냐-였었고.

다행히 인턴을 하면서도 계속 다니고 싶은 회사(이거 생각보다 어려움)를 찾아서 첫 회사로 다니는 행운을 잡을 수 있었지.


첫 회사를 2년 다니고, 두 번째 회사를 3개월 다녔고, 세 번째 회사를 1년 다니다가 최근에 그만뒀어.

나이에 비하면 회사를 너무 자주 옮겼어.

내 커리어는 한 선배의 표현에 따르면 '좋게 말해 조각보 나쁘게 말하면 누더기'라고 하더라.

어떤 경험도 내가 잘 씹어먹으면 배울 수 있는 게 많겠지만, 굳이 다시 선택하라면 난 첫 회사를 좀 더 오래 다녔을 것 같아.

꼭 3년을 채워야 된다- 뭐 이런 건 없지만, 그래도 분명 한 곳에서 오래 일했을 때 쌓이는 커리어적인 이점도 있고, 오래 일했을 때만이 경험할 수 있는 요소도 있을 것 같아.


그런데 막상 글을 쓰다보니 생각난 게, 첫 회사를 1년쯤 다녔을 땐가?

굉장히 가고 싶어서 들어갔던 회사였지만, 그래도 회사는 회사였던지라, 내 안의 자유로운 영혼(?)이 꿈틀대긴 하더라.

나는 3년만 딱 일하고 1년 동안 한 달에 한도시씩, 열두 도시에서 살아보는 계획을 세웠어.

두 번째 회사를 그만두고 진짜 실행해보려고 조금 준비도 하다가, 그만 뒀어.

막상 하려고 하니까 별로 안 하고 싶더라.

우울증 때문일수도 있고, 이 계획이 진짜 하고 싶었다기보다는 막연한 동경 내지 도피처였나봐.

이런 꿈이라도 가지고 사는게 더 행복하잖아.


정리하자면 나는, 일단은 취업을 했다가(5년 졸업했으니 칼취업은 아닌듯) 하고 싶은 일을 꿈으로 가지고 살다가, 막상 그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상황에도 처해봤지만 스스로의 선택으로 실현시키지 않은 사람이야.

내가 가졌던, 그리고 지금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 근거 없는 자신감은, 중간에 그만두어도 다시 취업하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을 거야-라는 생각이야.

대기업이나 그에 준하는 좋은 직장에 가기는 어려울 수 있어도, 괜찮은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건 가능하지 않을까? 정도가 내 생각이야.

더 노력하면, 그리고 운이 좋으면 남들이 말하는 좋은 직장에 가는 것도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닐 거라고 생각해.

그렇지만 아직 안해봐서, 잘 모르겠다.


여기까지가 경험에 바탕을 둔 내 이야기고, 너의 질문에 대해 경험보다는 생각에 근거해 답을 해보자면,

일단 나라면 하고 싶은 일을 먼저 하고, 그 다음에 취업할 것 같아.

너가 말한대로 커리어는 연속해서 쌓는게 가능하다면 좋고, 나는 일에서 재미와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편이기 때문에, 다른 것을 위해 오롯이 돈을 모으는 수단으로만 일을 하는 건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문제는 돈인데...


흠, 이렇게 쓰다보니 결국 내 대답은 다시 질문이 될 수밖에 없을 것 같아.

너가 답해보길 바라는 질문들은 다음과 같아.


- 내가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려는데 어느 정도의 돈이 필요한가?

> 학원강사+과외 등으로 6개월 바짝 벌어서 가능한 정도면 이걸 추천. 대기업 연봉으로 2년 정도 모아야 하는 거라면 취업을 추천.


- 내가 가고 싶은 회사나 추구하는 커리어는 어떤 것인가?

>> 그 회사나 커리어의 입사 문화, 이직률 등에 대해 상세하게 알아보는 걸 추천. 들어가기 힘들고 이직률이 낮은 회사일수록 차라리 늦게 취업하는 게 나아 보이지만, 분명 졸업 후 너의 행적에 대해 궁금하게 생각할 거야. 보수적인 회사일수록 이런 설명할 수 없는 기간에 대해 싫어하겠지.


위의 두 질문은 현실적인 선택을 할 때 필요한 질문들이고,

아래의 질문은 너한테 맞는 선택을 할 때 필요한 질문.


- 나는 다른 사람과 나를 얼마나 비교하나? 동기들이 좋은 직장에 취업해 준비된 미래를 먼저 설계해나갈 때, 나는 혼자서 제주도에서 유유자적하면서 불확실한 미래와 뒤처진다는 불안을 함께 즐길 수 있을까?


- 나는 움켜쥔 좋은 걸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인가? 한 번 열차에 올라타면 관성에 의해 계속 앞으로만 나아가는 사람인지, 일단 탔더라도 중간에 내릴 수 있는 사람인지?


이 정도 질문에 답하다보면 너가 결정을 내리는 데 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이상입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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