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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선 Aug 28. 2017

D-62. 상처에서 움직이는 남자에 대한 이야기

앤 타일러, <우연한 여행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

주인공 메이컨은 여행 책을 집필하는 작가다.

재밌는 것은 그는 여행을 몹시도 싫어한다는 점. 그의 책은 그처럼 여행을 싫어하지만 어쩔 수 없이 여행을 떠나야 하는 사람(대부분 출장 때문)을 위해 어떻게 하면 낯선 곳에서도 집처럼 별탈없이 지낼 수 있는지를 안내한다.

그런 정보를 모으기 위해 그는 출장을 다니면서 몇끼씩 아침을 먹고, 호텔을 점검한다.


기본적으로 보수적이고, 변화를 싫어하는 이 남자에게 큰 일이 닥친다.

하나뿐인 아들 이던이 죽은 것이다.

그것도 캠프에 갔다가 강도에게 총을 맞아서 죽는다.


메이컨과 아내 세라는 큰 상처를 입고, 결국 그들은 그 상처를 이겨내지 못하고 별거에 도입한다.

메이컨은 아내 세라를 그리워하지만, 세라는 완강하게 이혼을 준비한다.


그런 메이컨에게는 말을 지독히도 안듣는 에드워드라는 개가 있다.

그리고 뮤리엘이라는, 패션스타일부터 사고방식까지 독특한 여자가 메이컨에게 에드워드의 훈련을 제안한다.

그들은 연인으로 발전한다.


메이컨은 중간에 다시 세라에게 돌아가기도 하지만,

결국은 뮤리엘을 선택한다.


2.

전반적으로 잔잔하게 진행되는 이야기다.

메이컨이라는 예민하고 소심한 남자가 뮤리엘을 만나 조금씩 변화하는 과정이 현실적으로 담겨져 있다.

또한 자식을 잃는 것이 어떻게 부모의 삶과 감정을 망가뜨리는지도 담담하게 표현된다.


그러다가 메이컨은, 중요한 것은 그녀가 살아온 삶의 패턴임을 알게 되었다. 그는, 뮤리엘을 사랑하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놀라운 면은 사랑했다. 또 둘이 함께 있을 때 드러나는 자신의 놀라운 면도 사랑했다. 외국이나 다름없는 싱글턴가에서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고지식한 사람이라는 의심을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 냉정하다는 비난을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 마음이 약하다고 놀림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 그저 규칙적으로 사는 사람일 뿐이었다.
- 318페이지


메이컨과 뮤리엘은 나이차이, 성격차이, 취향차이 등이 극명한 커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이컨이 뮤리엘을 좋아하게 되는 과정과 이유가 이 문장에 집약되어 있다. 그녀의 존재 자체를 사랑하지는 않지만, 놀라운 면은 사랑한다. 무엇보다 둘이 함께 있을 때의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된다.


우린 아이 없이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랐어요. 난 '사실 이던이 태어나기 전에도 잘 지냈잖아?'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사실 그 전에 어떻게 지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어요. 우리에게 항상 그 아이가 있었던 것 같았어요. 그러니 일단 자식이 생기면 아이가 없었던 때는 생각할 수도 없게 되지요.
- 345페이지


요즘 여자인 친구들과 아이를 낳는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를 하곤 한다. 벌써부터 마음을 굳히고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하는 쪽도 있고, 귀여우니까 일단은 낳겠다는 쪽도 있고. 나는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

15개월에 접어든 조카를 무척 사랑한다. 너무 귀엽다. 놀아주는 건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귀엽다.

난 불행을 상상하는 안좋은 습관이 있는데, 가끔 조카가 사라지는 상상을 해버린다.

집에 굴러다니는 장난감 전화기나 조그만 운동화를 보다보면 괜히 마음이 철렁한다.

분명 우리 가족 모두 조카가 없던 시절에도 잘 지냈지만, 지금은 그 아이가 없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다.

그런 존재인가보다. 아이는.


알렉산더의 손을 꼭 잡으니 슬픔 같은 감정이 마음에 스르르 젖어들었다. 예전에 느꼈던 위험이 다시 그의 삶 속으로 파고들었다. 핵전쟁과 지구의 미래에 대해 다시 걱정해야 하게 생겼다. 이던이 태어난 후 '지금부터 다시는 완전히 행복해지지 못할거야.'라는 은밀하고 죄책감이 드는 생각을 자주 했다. 물론 그전에도 완전히 행복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 388페이지


알렉산더는 뮤리엘의 아들이다. 메이컨이 뮤리엘의 아들 알렉산더 역시 소중히 여기게 되면서 느끼는 감정이 표현된 문장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인 동시에 세상에 걱정할 일이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돌이켜보니 평생 먼저 무슨 일을 한 적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결혼, 두 가지 직업, 뮤리엘과 보낸 시간, 세라에게 돌아간 일... 하나같이 그에게 그냥 일어난 일 같았다. 그가 자발적으로 처리한 중요한 일은 한 가지도 떠올릴 수가 없었다.
이제 와서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었을까?
일을 다르게 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으려나?
- 534페이지


마지막 6페이지를 남겨두고 메이컨은 드디어 변화한다. 수동적으로 끌려다니는 삶에서 용기를 내서 자신이 선택을 내리는 것으로.

소설 내내 찌질이에 가까운 보통 사람이었던 메이컨이 변화를 결심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어서 기뻤다.



3.

삶에는 수많은 일이 우연히 일어난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좋은 일에만 계속 머물러 있을 수도 없고,

나쁜 일 역시 그렇다.


언젠가는 움직여야 한다.

그 움직임 역시 우연을 따라도 상관없지만,

중요한 결정만큼은 스스로 내리고 움직이는 사람이고 싶다.


*이 글의 모든 인용구는 <우연한 여행자>(앤 타일러, 위즈덤하우스)에서 인용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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