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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선 Sep 02. 2017

D-58. 예단 전야

누구를 위한 것인가

1.

이번 주말은 중요한 일정이 많이 있다.

우선 내일 오후에 대전에서 친한 친구의 결혼식이 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같이 다닌 친구이고 마침 다음달에 결혼하는 내가 부케도 받게 되었다.

최근에 겨우 만나서 청첩장을 받으면서 피곤함이 얼굴에 가득하던데,

부디 내일 별일 없이 잘 치르고 행복하게 신혼여행을 떠나길 바라는 마음이다.


2.

그리고 나서는 밀양에 있는 시댁에 간다.

이불 두 세트, 반상기 세트, 떡, 과일바구니를 이고서.

잃어버리는 큰일나는 액수의 현금과 함께.

드디어 예단이라는 것을 보내는 것이다.


일요일에는 밀양에서 돌아오면서 남자친구가 우리집으로 함을 가져온다.

이를 위해 급하게 맞췄던 반지를 오늘 종로에 가서 찾아왔다.

엄마는 예비사위를 맞이하기 위해 어떤 음식을 해야 할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중이다.


3.

결혼을 준비하면서 느끼는 건

결혼에 '원래'라는 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전통적으로 어떻게 했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해오는 방식이 있을 순 있겠으나

결국 중요한 건 두 집안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이다.


어려운 점은 이 과정이 굉장히 눈치싸움이라는 것이다.


현금예단을 얼마 해가야 뒷말을 안 들을까?

그쪽에서는 얼마나 돌려주실까?

등등


속시원히 얼마 받고 싶으신지, 얼마를 돌려주실 계획인지(사실 이것부터가 좀 웃기다. 왜 굳이 다시 돌려받을 돈을 드려야 한단 말인지...) 묻고 싶지만 속시원한 대답이 나오길 기대하기는 어렵다.


오늘 저녁 식탁에서는 아빠, 엄마에 연속극을 보시던 할머니까지 나오셔서 예단부터 결혼 후 보내야 할 이바지 음식까지 어떻게 할 것인지 설왕설래가 펼쳐졌다.

나는 관찰자 모드로 지켜보다가 어른들의 지령(이바지 음식을 받고 싶으신지 물어보고 오라)을 받아들고 자리에서 떠날 수 있었다.


4.

남자친구는 주말이 순식간에 사라진다는 게 매우 피곤한가보다.

지방에서 열리는 친구 결혼식 참석에,

밀양까지 왕복 운전도 해야 하고,

함을 가지고 와서는 아빠와 술도 마셔야 한다.


나야 백수이지만, 그는 꼬박 일해야 하는 직장인이니 그 마음을 알 것도 같지만

막상 피곤하고 조금은 짜증이 섞인 목소리를 들으니 괜스레 서운한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이것보다 요란하게, 절차 다 따져가며 하는 집들도 있겠지만

나는 이정도만 해도 매우 피곤하다.

누구를 위한 절차인 건지도 잘 모르겠고.


그저 무사히,

별일없이 지나가길 바랄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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