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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57. 꿈

일곱살 소년과의 대화

by 리지 Lizzy

1.

시댁에 왔다.

예단을 무사히 전달드렸고,

향어회라는 민물회를 초장에 버무려서 배터지게 먹었다.


잠깐 밤산책을 나갔는데,

막상 걷다보니 6.8km나 되는 거리여서 한시간 반이나 걸었다.


이제 씻고 잘 준비를 하는데,

7살된 시조카 남자아이가 은근슬쩍 내 방에 들어와서 트랜스포머 범블비를 가지고 논다.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재밌다.

집중력을 가지고 듣지 않으면 같은 한국말을 하면서도 반 정도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되는 게 흠이지만.


2.

용기있게 대화에 도전해봤다.


- 넌 꿈이 뭐야?

> 소방관이요. 근데 진짜 꿈은 아니에요.

- 그럼 진짜 꿈은 뭔데?

> 닌자요. 그런데 닌자는 빨리 움직여야 돼서 0킬로여야 돼요.


혼자 속으로 웃고 있는데, 반격을 당했다.


> 외숙모는 꿈이 뭐에요?

- 나...? 난 서점을 여는 거야.

> ...

- 서점이 뭔지 알아?

> 알아요. 마트 같은 거잖아요.

- 응 ㅋㅋ 책만 파는 마트 같은거야.

> 그래서 꿈을 이뤘어요?


3.

그래서 꿈을 이뤘냐는 질문은 처음 들어본 것 같다.

사실 서점도 꿈까지는 아니다.

그냥 요즘 하고 싶은 일일뿐.

하고 싶은 일을, 계획해서 실행한다고 표현하는 것과

꿈을 이룬다고 표현하는 것 사이에는 큰 간극이 존재한다.


4.

여전히 꿈을 꾸긴 하지만,

막상 꿈을 이룬다-거나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 것 같다.

이룰 수 있는 꿈은 꿈이 아니라고 여기는 것 같기도 하고.


5.

이룰 수 없을수도 있는 뭔가를 간절히 바란 적이 언제였던가.

언젠가 또 비슷한 질문을 만난다면,

그래서 꿈을 이뤘냐-는 소리를 듣는다면,

응. 그리고 여전히 다른 꿈을 계속 꾸고 있어-라고 대답할 수 있는

어른이 되길 꿈꾼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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