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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선 Sep 03. 2017

D-56. 길 위의 여행에 대하여

김희경, <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

1.

작년에 지식협동조합 롤링다이스에서 주최한 '여성의 일, 새로고침'이라는 강연을 통해 김희경 님을 처음 알게 되었다.

동아일보에서 17년 기자로 근무하다 몇 년간의 탐색을 시간을 가지고, 현재는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일하고 있으신 분이다.

흥미로운 분이라 저서를 독서 위시리스트에 올려두었는데, 신기하게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검색할 때마다 있었다.

'전환'이라는 제목으로 썼던 글의 소재가 되었던 <내 인생이다>는 알라딘 합정점에서,

이번 글의 소재인 <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이하 '산티아고')은 알라딘 수원점에서 인연이 되어 만나게 되었다.


<내 인생이다>보다 1년 먼저 출간된 '산티아고'를 쓸 때만 해도 저자는 아직 기자이고, 사고로 남동생을 잃었다.

"길을 헤맬 걱정도, 내일은 어디에 갈지 고민할 필요도 없이 배낭을 메고 걸어갈 체력만 있으면, 그저 화살표를 따라 쭉 걷기만 하면 되는 길"이라는 점에 혹해서 산티아고를 여행지로 골랐고, 무작정 혼자 있는게 여행의 목적이었다.

처음부터 큰 깨달음이나 변화를 추구하고 길에 오른 것이 아니었고, 실제로 큰 변화를 만난 것도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과 그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은 조금씩 저자를 변화시켰다.

솔직한 문체가 좋았고, 섣불리 독자를 가르치려는 태도가 없어서 참 재밌게 읽었던 여행기다.


2.

낯선 풍경과 사람들, 세상의 무수한 사건들은 내가 관심을 기울일 때에만 내 경험이 될 것이다. 여기서 뭔가 겪고 싶다면 근사한 풍경과 만남, 사건이 날 찾아와주기를 기대하기 이전에 우선 나 자신부터 바깥으로 눈을 돌릴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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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라오스 여행을 다녀와서 얻어온 게 없다고 사람들한테 푸념을 늘어놓고 다녔다.

그런데 그게 과연 라오스의 잘못일까. 충분한 관심을 낯선 나라와 낯선 사람들에게 주지 않았던 내 잘못이 아닐까.

20대 초반처럼 어딜 가도, 누굴 만나도 호기심이 넘쳤던 시기는 지났다.

지금부터 하는 여행은 내가 어떤 마인드로 하느냐에 따라 관광 및 휴식이 될수도, 새로운 나를 만나는 여행이 될수도 있을 것이다.


평소 남에게 신세 지기 싫어 아쉬운 소리를 잘 못하는데, 그만큼 남이 내게 신세 지는 상황도 싫어한다는 걸 깨달았다. 첫날 낯선 사람들에게 어렴풋이 느꼈던 연대감도 얄팍한 감상에 불과해 보이기 시작했다. 남이 잘해주니까 좋았던 거지, 내가 뭘 해줘야 한다고 느끼는 상황이 되니 '연대감'은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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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솔직함에 한 번, 내 모습이 겹쳐보여 또 한 번 피식 웃었다. 날 챙겨주는 사람과의 동행은 환영이지만, 내가 배려하고 맞춰야 하는 동행은 힘들다. 애덤 그랜트는 <기브 앤 테이크>에서 사람을 더 많이 베푸는 기버(Giver), 준 만큼 베푸는 매쳐(Matcher), 더 많이 받아내는 테이커(Taker)로 나눴다. 나는 기버가 되고 싶지만, 내가 힘든 상황에서까지 도울 아량은 없는 매쳐이다.


관계 맺는 방법에 관한 한, 나는 상당히 서툰 '관계치'다. 내 딜레마는 늘 현 상태가 아닌 다른 상태를 소망한다는 점이었다. 혼자 있을 땐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함께할 누군가를 찾아 헤매고, 함께 있을 땐 관계 속에서 나 자신이 실종되어버릴 것만 같은 불안함 때문에 혼자가 되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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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할 때면 특히, 그리고 평소에도 종종 느끼는 감정이라 절절히 공감되었다. 혼자 있을 때는 관계가 그립고, 함께 있을 때는 고독이 그립다.


악령이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고 치자. "네가 지금 살아왔던 삶을 다시 한 번 살아야만 하고 무수히 반복해서 살아야만 할 것이다. 새로운 것이란 없고 모든 고통과 쾌락, 탄식이 같은 순서로 찾아올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이 삶을 다시 한 번, 그리고 무수히 반복해서 다시 살기를 원하는가?" 선뜻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지만, '아니'라고도 말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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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질문이었다. 현재의 삶을 디테일한 것까지, 심지어 순서도 똑같이 반복해서 경험하길 바라냐는 질문.

요약했을 때 '현재까지의 인생을 후회하시나요?'라고 해석할 수도, '같은 생을 반복해서라도 놓치고 싶지 않은 소중한 경험이 있나요?'라고도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대답은 일단은 '아니'다. 현생에 크게 불만족해서라기 보다는, 어느 정도 단순하게, 똑같은 삶이 반복되는 걸 바라지 않을 뿐이다.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Joseph Campbell)은 인간이 궁극적으로 찾는 건 "삶의 의미가 아니라 살아 있음의 체험"이라고 들려주었다. 육체적인 경험과 내적인 경험이 현실 안에서 공명할 때라야 겪을 수 있는, 살아 있음의 황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최상은 어떤 순간에 현존하는 그런 경험뿐이라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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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순간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꼭 최선을 다해 후회없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너무 피곤하니까.


다만 주기적으로 내가 살아있다고 느끼고,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경험을 하는 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3.

이번에 라오스에 다녀와서 '여행지에서의 고행이 그리 반갑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단적인 예로 인도에 가고 싶은 마음이 좀 사라졌달까.


이 책을 사면서도 '내가 고작 걷기 위해 산티아고에 갈 일은 없을 거야. 어차피 안할 경험 간접 경험이나 하자'라는 마음이었다.

책을 읽으면서도 난민수용소같이 생긴 불편한 알베르게(산티아고 순례길 위에 있는 공동 숙소들) 이야기를 볼때마다 '으으 싫다'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읽고 나니 산티아고의 매력이 물씬 느껴진다.

길 위의 여행은 목적지 도달 여부와 상관 없이

그 여정 자체가 이미 충분히 아름답다는 점이 삶과 닮아 있다.


비단 산티아고가 아니라 제주 올레길이라도,

본격적인 길 위의 여행을 해봐야겠다.   


*이 글의 모든 인용구는 <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김희경, 푸른숲)에서 인용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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