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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선 Sep 09. 2017

D-51. 신혼부부 연습

아직은 헤어짐이 있어 다행이야

1.

남자친구가 신혼집에 먼저 들어가 산지도 거의 한 달이 다되어 간다.

이삿날에만 같이 밤을 보내고,

그 후에는 아빠의 반대(?)로 신혼집에서 놀기는 해도,

잠은 집에 와서 잤다.


하지만 우리 부모님은 주말부부이시고,

엄마는 나의 혼전생활에 관대(?)한 편이시기 때문에 어제는 오랜만에 나도 신혼집에서 잤다.


2.

남친이 오늘 휴가를 썼기 때문에 요근래 정말 드물게 우리끼리만 약 22시간을 붙어 있었다.

어젯밤에는 같이 '집밥백선생'을 보고, 늦은밤 야식으로 만두를 구워먹었다.


오늘은 거의 정오가 다된 시간에 일어나

집근처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었다.

냉장고가 텅텅 비어있는 것을 채우겠다는 야심으로, '집밥백선생'에서 봤던 오야꼬동 재료와 야식용 안주와 술을 잔뜩 샀다.


그리고 집에 와서 오늘의 가장 중요한 할일이었던 커튼 달기에 도전했다.


우리집에서 전동드릴을 가져와서 커튼 봉을 올릴 수 있는 고리(브라켓이라고 함)를 천장에 못으로 고정시키는 게 제일 중요한 미션이었다.

문제는 못을 박을 자리 바로 옆에 몰딩이 있어서 공간이 굉장히 좁았고, 전동 드릴에 자성이 별로 없어서 못이 자꾸 떨어지는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남친이 못을 박고 나는 옆에서 위치를 봐주고 못이 떨어지면 주워주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게 적어놓고 보니 고작 세 문장으로 요약되는 일인데, 막상 해보면 당황스러운 일도 많고 짜증도 많이 나는 일이었다.

원래는 내가 혼자 평일에 와서 해볼까도 생각했던 일인데, 혼자 했으면 못했거나 뭔가 서러움을 느끼면서 했을 것 같다.

못 줍는 일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나는 의자 위에 올라서서 전동드릴을 들고 팔을 위로 뻗은 상태로 있는데 못이 떨어져 데굴데굴 이상한데로 굴러가면 정말 빡친다. 그나마 아래에 앉아있는 사람이 주워주니까 할만한 것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커튼 달기 미션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남친은 그동안 방치해놨던 옷정리를 하고 나는 집안 정리를 했다.

최근 청소기를 새로 구입해서 조립도 했다.


정리가 끝나니 시간은 어느덧 오후 5시.

같이 오야꼬동을 만들어먹고 설거지까지 마치니 6시 20분.

TV를 조금 보다가 8시 수영 수업을 가기 위해 신혼집을 나온 게 6시 45분.


그렇게 약 22시간의 예비 신혼생활이 종료되었다.


3.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오래 붙어 있다가도 지금은 내가 집으로 돌아가는데, 결혼을 하면 이런 헤어짐이 없어지는거구나...


문장으로 쓰고나니 왠지 결혼하면 이런 헤어짐을 겪지 않아도 되서 좋겠다-라고 써야 될 것 같지만,

개뿔.


솔직히 헤어질 수 있어서 좋았다.


남친도 비슷하게 생각할 것이다.

남자들 사이에서는 흔히 '결혼 = 여자친구랑 너무 재밌게 놀았는데, 여자친구가 집에 안가는 것'이라고 한다니 뭐.


같이 힘을 합쳐 커튼을 달면서

뭔가 괜한 연대감과 동료의식 같은 게 샘솟긴 했지만.

같이 장봐서 밥 해먹는 것도 좋긴 하지만.


22시간을 넘어,

220시간

2200시간

22000시간을

함께 보낼 걸 생각하니 조금은 두렵다.


새삼 내가 결혼을 한다는 게 실감이 나는 밤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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