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주의적 현실주의적 AI 비판

장강명 '먼저 온 미래'

by myungwo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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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9일 알파고가 이세돌을 1국에서 이겼다. 당시 편집국 분위기가 떠오른다. 해당 부서에서 이 대국이 있었음을 아침에 보고했는지 모르겠으나 보고가 있었다 해도 아마 흔한 '인간 대 기계' 이벤트로 여겼을 테다. 오후 들어 이세돌의 패배가 확정됐을 때 편집국은 아마 난리가 났을 것이다. 뒤늦게 기사 개수를 추가하고 보강하느라 분주했다. (신문사는 이런 일을 잘한다. 한강이 아무도 예상 못한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때도 두세 시간 만에 4~5개 면을 채우는 기사를 써냈다.) 지금 찾아보니 1~3면에 알파고-이세돌 관련 기사가 배치됐다. 바둑 기자와 IT 기자가 나눠 썼다. 첫 대국 다음날인 10일 톱기사 제목은 '인공지능, 인간을 넘었다'다. 지금 보면 다소 심심한 제목이지만, 당시로선 이 제목밖에 떠올릴 수 없었을 것이다. (조선일보는 조금 더 테크니컬 하게 '2살 인공지능, 5000년 인간 바둑을 넘다'였다.) 이세돌이 4국을 이긴 다음 날이었던 14일 자 제목은 찾아보지 않고도 지금 바로 기억한다. '인간승리'. 다들 알다시피 이날의 승리는 인간의 마지막 승리로 기록됐다. 이후 편집국 기자들은 관련 회의에서 편집국장에게 대국 첫날 기사 준비가 미흡하지 않았느냐고 따졌는데, 국장은 순순히 실수를 인정했다. 그걸로 더 이상 추궁은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국장이 딱히 잘못한 것도 없다. 거기 있는 누구라도 국장이었다면 똑같이 생각했을 테니까. 이세돌의 패배는 구글 딥마인드 관계자를 제외하면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어쩌면 구글 사람들도 예상 못했을 수도 있다.)


장강명의 '먼저 온 미래'는 이 사건 이후 바둑계에 일어난 일을 그린다. 부제는 'AI 이후의 세계를 경험한 사람들'이다. 바둑계라는 곳은 특수한 세계라서 이곳에 일어난 일이 다른 분야에서도 일어난다는 보장은 없지만, 아마 참고는 될 것이다. 작가는 특히 자신이 몸담고 있는 문학계에 AI가 본격 도입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바둑계의 전례를 통해 탐구하려는 것 같다.


바둑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프로 리그가 있고, 동호인이 존재한다. 어차피 기계가 더 잘하니 바둑을 기계에게 대신 두게 하자는 주장도 나오지 않는다. 다만 장강명이 수많은 전현직 프로 바둑 기사와 관계자와 인터뷰해 전하는 바를 보면, 바둑의 패러다임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대부분의 바둑 기사들은 인공 지능을 스승 삼아 수를 연구한다. 그 때문에 대국 초반의 수는 많은 기사들이 비슷해졌다. 과거 고수들의 바둑은 한참 전개돼도 누가 이기고 있는지, 형세가 어떤지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해설자들도 "뒷맛이 좋지 않다" 정도의 다소 추상적인 말로 설명할 뿐이었다. 요즘은 "인공지능에 따르면 방금 이 수로 인해 이길 승률이 3% 올랐습니다"라고 설명한다고 한다. 과거엔 기사들의 개성이 비교적 뚜렷했다. 그래서 별명도 '우주류' '잡초' '신산'같이 붙었다. 요즘 한국 최강자 신진서 9단의 별명은 '신공지능'이다. 바둑계는 어쩌면 '평평'해졌다. 과거엔 최고 기사와 중급 기사의 수준차가 확연했으나, 이제는 저마다 인공지능이라는 '스승'을 모시면서 실력차가 줄었다. 이는 한국, 중국, 일본 등 전통적 바둑 강국과 유럽, 미국 등 신흥국의 격차를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갈 요인이기도 하다.


이세돌은 알파고에게 패배한 이후 결심을 굳히고 은퇴했다. 더 이상 바둑이 '예술'일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바둑이 두 명이 함께 수를 고민하고 두면서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내는 예술이라 배웠는데 인공지능이 나온 이후로는 마치 답안지를 보고 정답을 맞히는 것 같아 오히려 예술성이 퇴색된 게 아닐까 생각한다”는 것이다. 장강명은 다소 집요하게 우리 문화와 언어의 관습을 캐묻는다. 바둑은 예술인가 스포츠인가, '인간적인 바둑'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기세' '모양' '예술' 등 바둑을 둘러싼 많은 개념이 매우 모호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AI는 곧 인간 소설가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걸작을 써낼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도 내비친다. 그때도 자신은 문학을 사랑하겠지만, 과거와 같은 사랑은 아닐 것이라고 씁쓸하게 고백한다. AI가 글쓰기 작업에 본격 도입된다면, 그걸 쓰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 보고, 자신도 픽션이나 논픽션 창작에 활용할 것이라고 얘기한다. 9장까지, 도래할 AI 시대에 대한 장강명의 태도는 완연한 패배의 기운을 받아들인 뒤 타월을 던지는 복서 같다.


그런데 10장과 11장에서 태도가 급변하는 듯 느껴진다. '기계의 발달을 제어하려는 시도'는 '불경'이나며 반발한 조지 오웰을 적극적으로 인용하고, '기술이 이끄는 가치'가 아니라 '가치가 이끄는 기술'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 어떤 규제도 회피한 채, 거의 무한한 권력을 화성 식민지 같이 기괴한 목표를 위해 사용하는 IT 그루들을 비판한다. 9장까지 패배주의적 혹은 현실주의적 면모를 보이다가, 10장에서 전통적 비판 지식인의 면모를 내비친다. 9장까지는 '빌드업'이었나. 흥미롭고 어리둥절한 독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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