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대 할머니

김언수 '설계자들'과 구병모 '파과'

by myungworry


9791162203620.jpg

김언수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설계자들'을 읽었다. 한국에서 성공했으며, 해외 수십 개국에 판권이 팔렸다고 한다. 암살 사건의 의뢰자, 사건의 설계자, 암살 실행자, 시신 처리자 등이 얽히고설키는 이야기다. 고아 소년 래생은 '도서관'을 운영하는 너구리 영감의 손에 의해 암살자로 길러지고, 너구리 영감의 사업은 신흥 조직의 보스 한자에 의해 위협받는다. 결국 래생과 한자가 최종적인 대결로 향하는 이야기다. 여기에 주인공의 과거사나 여러 조연 캐릭터와의 연결도 자연스럽다. 400쪽 이상이지만 술술 읽힌다. 작가는 '이야기꾼'으로서의 소설가 역할을 강조한다. 그는 인터뷰에서 "소설가는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지 문장을 아름답게 쓰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설계자들'은 그런 목적을 달성했다. 래생이 일을 끝낸 후 숨어 살기 위해 공단 지역에 갔다가 여공하고 몇 달간 동거한 뒤 종적을 감추는 에피소드 같은 것에서는 어딘지 1990년대 후일담 소설의 느낌도 난다. 2010년 출간한 책이지만, 그 이전에 쓰인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이런 요소 때문일까.


내친김에 킬러를 다룬 또 다른 소설을 읽었다. 구병모의 '파과'다. 이 작품은 예전에 뮤지컬로 먼저 본 적이 있었다. '파과'는 '설계자들'보다 단 3년 늦게 출간됐지만, 두 작품의 거리는 10년 이상으로 보인다. 60대 여성 킬러 조각과 그를 죽여야 할 이유를 갖고 있는 젊은 남성 킬러 조각의 대결이 중심이다. 조각은 한때 최고의 실력을 선보인 킬러였지만 이제는 나이 들어 일하는데 필수적인 육체의 예민함이 쇠하고 무엇보다 감정적으로 동요하는 일이 잦아졌다. 조각이 젊은 남성 의사, 과일가게를 하는 그의 노부모, 반려견 무용 등과 킬러 일 하는 데는 부적절하지만 인간적으로는 자연스럽게 돋는 애착, 연민, 사랑을 느끼는 과정을 그린다. 자신의 늙음, 육체의 변화에 대한 애상도 담겼다. 이렇게 쓰니 센티멘탈한 작품 같지만, 서사의 흐름은 정확하고 내면 묘사는 냉정하다. '설계자들'이 암살 비즈니스가 이뤄지는 '세계'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파과'는 살인 청부를 행하는 '사람'에게 집중한다.


'세계'보다 '사람'에 관심 있어서는 아니지만, 어느 쪽이 더 취향이냐고 내게 묻는다면 '파과'를 택하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교토식 화법과 아와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