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를 보고 원인을 아는 남자

김필산 '엔트로피아'

by myungwo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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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의 오랜 독자이기에 최근 한국에도 괜찮은 SF 작가, 소설들이 나온다는 점이 반가우면서도, 그 경향성에는 다소 심드렁한 편이었다. 난 옛 작가라면 아서 클라크,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비교적 요즘 작가라면 켄 리우, 테드 창에 호감을 가지고 있다. 새로운 개념과 생각을 탐구하고, SF가 장르 문학이라는 점을 잊지 않는 작가다. 요즘 인기 있는 한국 작가들의 SF는 새로운 개념의 탐구라기보다는, 익숙한 (그리고 작가가 비판적으로 보는) 현실의 반영이라고 여겨졌다. 잘 쓰여 잘 읽히지만 지적으로 자극적이지는 않았다.


김필산의 첫 장편 '엔트로피아'는 이런 한국 SF의 경향과 꽤나 다른 작품이다. 책 앞머리에 작중 인물의 행적과 사건을 기록한 연보가 제시돼 있는데, 책을 읽으면서 이 연보를 수시로 들여다봐야 한다. 사실 다 읽고 나서도 이해되지 않는 개념이 있고, 읽으면서는 이해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이해한 것인지 모호한 부분도 있다. 읽고 나서도 뭘 읽은 건가 싶어서 작가의 말이나 다른 리뷰들을 찾아보기도 했다. 작가는 비교적 친절하게 자신의 작의를 밝혔고, 또 리뷰를 링크해두기도 했다. 그것들을 읽으니 이해에 도움이 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역시 완전히 이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현대 물리학에 익숙한 독자라면 작품 속에서 잘못된 설정이나 아이디어를 찾아낼지도 모르지만, 난 잘 모르겠다.


'장편'이라고 묶였지만, 사실 세 편의 단편을 묶은 연작소설로 볼 수도 있다. '선지자'라는 화자를 통해 새 단편의 연결을 시도하지만, 딱히 연결이 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특히 두 번째 이야기인 '책이 된 남자'가 이질적으로 읽히기도 한다. 실제로 이 작품은 장편 출간 전 독립된 단편으로 발표됐다고 한다.


수 천 년을 살아온 선지자의 말을 통해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는 노인으로 태어나 아기로 죽는다. 미래에서 태어나 과거로 향한다. '노인에서 태어나 아기로 죽는다'는 설정은 피츠제럴드의 소설과 핀처의 영화로 익숙한 '벤자민 버튼' 이야기와 유사하다. 벤자민 버튼은 육체의 노화만 거꾸로지만, 선지자는 시간, 사건의 인과도 거스른다는 점이 다르다. 선지자는 결과를 먼저 경험하고 원인을 알아낸다. 주머니에 큰 돈이 있는데 과거로 향해 살다 보니 그 돈이 무언가 귀한 것을 판매한 뒤 받았다는 점을 알게 된다는 식이다. 연인과의 이별을 먼저 경험하고 이후에 차츰 연인과 처음 만나는 순간을 향해 나아간다. 이런 기괴하고 낯선 설정은 독서의 속도를 자꾸 늦춘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중 '테넷'이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점과 비슷하다.


마지막 이야기인 '두 서울 전쟁'은 그 자체로 훌륭한 단편이다. 거대한 시간 루프(일종의 국가적 차원의 시간 여행 수단)가 만들어진 미래를 배경으로 과거의 한국이 미래의 한국을 침략한다는 내용이다. 독재자 조부진('푸틴'에게서 따온 이름이라고 보임)은 서울 과밀화를 해소하기 위해 미래 서울을 점령하려 하고, 이를 막기 위해 한국계 미국인 정치학자 김신주('키신저'에서 따온 이름)가 상상 못 할 방법을 사용한다는 내용이다.


'엔트로피아' 세계관에서 '백 투더 퓨처'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시간여행을 해서 과거에 영향을 미쳐도 일어나기로 한 미래의 일은 그대로 일어난다. 인간의 의지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 '인간에게 자유의지는 있는가'라는 오래된 신학, 철학 논쟁이 다시 불려 나온다. 이 작품 속에서 인간은 미래의 결과를 알면서도 의지가 있는 양 행동한다. 예견된 전쟁을 막을 수 없는 걸 전제하면서도, 김신주는 어떤 방법으로 여기에 돌파구를 낸다. 물론 김신주의 방법은 현대의 인권, 민주주의 개념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세계 초강대국 리더들의 정치는 이에 부합하나.


영화를 볼 때도 비슷하게 생각해 온 것이지만, 좋은 작품은 관람, 감상, 독서를 끝낸 뒤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작품의 의도에 대한 궁금증이든, 감상자 자신에 대한 성찰이든, 작가에 대한 감탄 혹은 분개든, 해당 작품의 배경이나 다른 작품과의 연계든, 자꾸 생각하게 만든다. 작품이 안팎으로 너무나 말끔해서, 영화관을 나온 뒤, 책장을 덮은 뒤 생각이 나지 않는 작품은 생각과 달리 그다지 좋은 작품이 아니다. '엔트로피아'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서 왠지 속은 것 같기도 하고, 오히려 너무나 빼어난 작품을 제대로 몰라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는 점에서, 좋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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