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노인 이야기를 쓰는 무서운 노인

스티븐 킹 '더 어두운 걸 좋아하십니까'

by myungwo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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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의 소설을 많이 읽어왔고, 중단편도 꽤 좋아한다. '그것' '캐리' 등 대표 장편에 비해서는 덜 주목받지만, 킹의 중단편은 나름의 맛이 있다. 지난해 현지에서 출간된 신작 중단편집 '더 어두운 걸 좋아하십니까'도 마찬가지다. 킹은 벌써 80대에 가까워지고 있지만, 작품의 질이나 양이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한 권으로 내기엔 분량이 많은 것인지 상, 하로 나뉘었다. '별종 윌리'는 학교와 가족 내에서 별종 취급받는 소년 윌리와 죽음에 가까워진 할아버지 이야기다. 일반적인 킹의 독자라면 노년과 소년의 훈훈한 우정 이야기라고 생각할 리 없다. 중편 '대니 코플린의 악몽'은 수록작 중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꿈에서 살인 사건 현장을 목격한 뒤 현장에 가서 확인해 신고했다가 범인으로 몰리는 평범한 남자 이야기다. 살인 사건 현장을 꿈에서 봤으니 '평범'하다고 말하는 것이 이상하지만, 킹은 가족, 직업, 생활과 사고방식 등 모든 면에서 이 남자가 평범하다고 묘사한다. 오히려 시신이 훼손될까 봐 우려해 굳이 오해를 감수하고 신고하는 모습에선 선량하고 정의감 있는 시민이기도 하다. 범인으로 오인된 남자가 누명을 벗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이야기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겠지만, 이 작품의 '킥'은 젤버트라는 특이한 형사의 존재다. 범인을 잡아 피해자의 신원을 하겠다는 젤버트의 집착은 광기로 변하기 시작한다. 킹은 '작가의 말'에서 젤버트라는 이름을 '레미제라블'의 자베르에서 따왔다고 밝히고 있다. 흔한 부패 경찰이나 폭력 경찰이 아니라는 점에서도 젤버트는 매우 새롭고 독특한 '나쁜 경찰' 유형으로 기록될만 하다.


'로리'는 상처하고 상실감에 빠진 노년의 남자가 누나로부터 억지로 떠안기다시피 한 개 로리와 우정을 쌓아가는 이야기다. 노인과 개가 사이좋고 훈훈하게 늙어가며 이야기가 마무리되리라 생각하는 킹의 독자는 없겠지. '방울뱀'은 쌍둥이 어린이 유령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샤이닝'을 연상케 한다. '앤서 맨'은 사랑스러운 작품이다. 인간에겐 왜 행운이 오고 또 불운이 오는가. 인간은 의지로 사는가 운명에 따라 사는가. 삶의 목표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이런 근본적인 질문들을 대가다운 솜씨로 차분하게 풀어낸다. 지금 내 처지를 돌이키며 가슴이 조금 쓰린 설정도 있었다. 책 표지 뒷면에는 이 작품이 '킹의 최고 단편으로 손꼽'힌다고 적혔는데, 킹의 모든 단편을 읽어보진 못했지만, 과장은 아닐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번 수록작들에는 노년의 남자가 무척 많이 등장한다. 노인은 때로는 극악한 악당이고 때로는 아들이나 손자는 생각지도 못한 용기를 내는 전사고, 때로는 인생을 현명하게 마무리하고 있는 현인이다. 물론 이 노인들은 그저 개념으로서의 노인이 아니다. 언제나 킹은 육체(와 그 파열)의 묘사를 중시해 왔다. 노인의 몸 상태를 이렇게 끔찍하게 그리는 작가도 많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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