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트 벤틀리 '기차의 꿈'
***스포일러 있음
넷플릭스에서 '기차의 꿈'을 본 지 5분 정도 지났을 때 난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영화는 19세기 태어나 20세기 중반에 죽은 벌목꾼 로버트 그레이니어(조엘 에저튼)의 삶을 그린다. 내레이터가 도입부부터 등장해 로버트의 삶을 간간히 요약한다. 영화 초반부터 관객은 내레이터를 통해 그레이니어가 요절하지 않고, 평생 거주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평범한 삶을 살다가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나 한평생 평화롭게만 살다 가는 사람이 있겠는가. 로버트는 친부모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고, 어린 나이에 목에 목적지를 걸고 기차에 태워져 낯선 곳으로 보내진다. 별다른 목적 없는 삶을 살던 로버트는 교회에서 글래디스(펠리시티 존스)를 만난다. 둘은 곧 부부가 된다. 넓디넓은 미국 시골 땅이니 마음에 드는 장소에 돌 박고 나무 기둥 올리면 그곳이 집이었다. 둘 사이엔 딸이 태어난다. 이곳저곳 공사 현장을 다니며 벌목을 해야 했던 로버트는 몇 달간 집을 떠나 일해야 하는 경우가 잦았고, 글래디스는 슬슬 정착해 집 주변에서 일을 찾아보자고 제안한다. 비극적인 사건으로 인해 그 제안은 실현되지 않는다.
로버트는 과묵한 남자다. 주로 벌목 현장의 여러 상황을 지켜본다. 중국인 노동자가 별 이유 없이 잡혀가는 모습, 형제의 복수를 위해 찾아온 사람에게 동료가 총에 맞는 모습, 갑자가 땅에 떨어진 나무에 맞아 동료가 세상을 뜨는 모습을 목격한다. 로버트뿐 아니라 대부분의 노동자가 잠시 놀랄 뿐 큰 동요는 없다. 잠시 술렁이거나 장례를 치른 뒤 곧바로 일터에 복귀한다. 이들이 딱히 매정하다거나 사측으로부터 착취당한다기보다는, 그런 죽음이 잦아서 익숙해졌기 때문인 것 같다.
로버트는 별다른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사회가 오랫동안 간직해 온 가치를 공유하는 남자다. 로버트는 동료 중국인 노동자가 잡혀가는 것을 막지 못한(혹은 동조한) 일을 두고 오랫동안 가책에 시달린다. 아내와 딸을 평생 그리워하고, 어려울 때 도움을 준 원주민 친구에게 고마움을 표할 줄 안다. 현장에서 사망한 노령의 동료 안(윌리엄 H 메이시)으로부터 이야기를 듣고는 나무 베는 일에도 자책을 느끼기 시작한다. 지구 위 모든 것이 연결돼 있으며, 인간은 지금 신이 설계한 기계 장치의 부품을 함부로 빼는 중인지도 모른다는 자각이다. 톱으로 나무를 베던 로버트는 현장에 기계톱이 도입되자 더 이상 자신이 일할 곳이 아니라고 느낀 뒤 벌목일을 그만둔다. 그렇게 인적 없는 숲에 터전을 잡고, 가끔 중국인 노동자나 가족의 환영을 보며, 마을에서 잡일을 하며 생을 보낸다.
로버트가 도시로 나들이 나오는 장면이 종반부에 나온다. 때마침 상점가의 텔레비전에서는 우주로 나간 인류의 모습이 방영되고 있었다. 4달러에 복엽기 체험을 한 로버트는 비행기가 땅을 머리에 두고 거꾸로 도는 순간, 자신과 이 세상이 연결돼 있다고 느낀다. 80대가 된 로버트는 예의 그 산속 오두막에서 잠든 채 숨지고, 그가 죽은 사실은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는다. 로버트는 후사를 남기지 않았고, 평생 전화를 사용한 적이 없었다고 내레이터는 말한다.
감독은 테렌스 맬릭의 영향을 언급했고, 나는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 미국의 개발 시대를 회고적, 대안적, 관조적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퍼스트 카우'와의 유사성을 봤다. (같은 시기를 다뤘다 해도 '레버넌트'와는 극과 극이다) '퍼스트 카우'를 연상한 건 화면비가 비슷('기차의 꿈'은 1.46:1, '퍼스트 카우'는 1.37:1) 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쩌면 세속적으론 기억될 수 없고 더없이 평범했지만, 사실 자신만의 온전한 삶을 살다 간 남자를 그린다는 점에서 '벌목꾼판 스토너' 같기도 하다. '기차의 꿈' 원작을 빌리려 도서관을 찾으니, 이미 예약자가 여러 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