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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로피와 생명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by myungworry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추수밭)을 읽다. 박동환의 책을 몇 권 읽고 나니 읽고 싶어 졌다. 둘 다 한국의 학자로선 드물게 독자적인 사유 체계를 세우려고 노력한 이들이다. 박동환이 존재론에 집중한다면, 장회익은 자연과학 접근에 기반한 인식론을 보여준다.


10회의 강의 형식으로 돼 있지만, 읽기가 만만치는 않다. "특정 분야의 사전 지식을 요구하고 있지는 않으나, 불가피하게 일정 분량의 수학적 표현들마저 피해 갈 수는 없었다"는 안내가 미리 적혀 있다. 저자는 고등학교까지의 교육과정을 회상, 연장하면 되는 정도라고 하는데, 나는 고등학교 수학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진 것 같다. 아쉽지만 수식은 건너뛰고 읽었다.


퇴계 이황이 선조에게 바친 '성학십도'와 중국 곽암선사가 작성한 '심우십도'의 체계를 차용해 우주의 탄생부터 생명의 원리까지를 설명한다. 고전역학, 상대성이론, 양자역학, 생명, 인식의 과정 등을 주요 학자들의 삶과 그들의 생각을 통해 살핀다. 예를 들어 뉴턴의 고전역학이 '소의 자취를 보다'에 해당한다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소를 보다'다. 양자역학으로 인류는 '소를 얻었다'. 통계역학으로 '소를 길들이고', 우주의 팽창과 물질을 이해함으로써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


'우주의 엔트로피는 증가한다'는 식으로 막연하게만 알고 있던 것이 "거시상태의 변화는 '있을 수 있는 확률이 적은 거시상태'에서 '있을 수 있는 확률이 큰 거시상태'쪽으로 일어날 것이고, 이는 곧 '해당 미시상태의 수가 적은 거시상태'에서 '해당 미시상태의 수가 큰 거시상태' 쪽으로 일어난다는 말에 해당한다"는 말로 정리돼 있다. 일단 소금이 물에 섞이면, 소금과 물이 저절로 분리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리학자인 슈뢰딩거가 생명의 기원에 대해 강의한 대목이 인상 깊었다. 슈뢰딩거의 이해가 결국엔 틀렸다고 보는 사람도 만난 적이 있지만, 저자는 생명을 물리적 현상으로 보는 슈뢰딩거의 영향은 왓슨과 크릭의 DNA 발견으로 이어졌다고 본다. 얼핏 무질서하게 널려있는 물질들이 정교한 생명으로 진화하는 것은 엔트로피의 법칙에 어긋나는 듯 보이지만, 장회익은 다음과 같은 그림으로 생명의 탄생을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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