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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의 호흡

윤종빈의 '수리남'

by myungwo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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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수리남'을 봤다. 윤종빈 감독의 첫 시리즈 연출작이다. 6부작을 이틀에 걸쳐 다 봤으니, '몰아보기'를 좀처럼 하지 않는 내게는 이례적인 속도였다.

그렇다고 '수리남'에 만족했나. 딱히 그렇지는 않다. 아무튼 끝까지 다 봤으니 재미없었다고는 말하지 않겠지만, 윤종빈의 전작 영화들을 봐온 나로서는 아쉬운 점들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우선 지금껏 영화만 찍어온 윤종빈이 시리즈의 호흡에 온전히 적응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리남'은 2시간에서 2시간30분 사이의 영화로 만들었어도 좋을 소재였을 것 같고, 지금처럼 시리즈로 찍었다 해도 1~2회 정도를 줄이거나 각 회당 10분 정도를 걷어냈으면 좀 더 속도감 있지 않았을까. 특히 대사가 좋지 않다. '범죄와의 전쟁' 등에서 말맛나는 대사가 많았던 걸 생각하면, 믿기 힘들 정도로 긴장감 없는 대사가 이어진다. 시리즈에서는 두 사람의 대화가 이렇게 늘어져도 된다고 생각했던 걸까. '수리남'의 이야기를 이끄는데 상당한 지분이 있는 강인구(하정우)와 최창호(박해수)의 전화 통화는 확실히 느슨하다. 둘의 전화 통화는 한 이야기를 하고 또 하는 가족 간의 잔소리를 듣는 듯하다.

'수리남'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조봉행이라는 악당이 남미의 소국 수리남에 가서 거대 마약상이 된 이야기다. 여기에 윤종빈은 조봉행을 모델로 하는 전요환(황정민)을 목사로 설정했다. 전요환은 어설프게 목사 흉내 내는 것을 넘어, 실제 많은 열성 신도를 보유한 컬트집단의 리더다. 넷플릭스 다큐에서 종종 본 듯한 과격한 사이비 종교 집단이 '수리남'에서 구현된다. 윤종빈은 컬트 리더 이야기, 마약왕 이야기를 모두 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이 두 가지 이야기가 잘 섞인 것 같지는 않다. 전요환을 따르는 컬트 신도들은 초반부 조금 나오다가 국정원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급격히 분량이 줄어든다. 극 후반부에는 거의 언급되지도 않는다. 이렇게 다룰 일이었다면 굳이 전요환을 목사로 설정할 필요가 있었을까. 사이비 컬트 집단 이야기를 더 풀고 싶었다면 전요환이 마약상일 뿐더러 사이비이나마 종교 집단 리더로서의 자질도 갖고 있다는 점을 보여줘야 하지 않았을까. 전요환이 가진 극악한 마약상으로서의 면모가 강조됐기에, 그를 영적인 지도자로 떠받드는 신도들의 행동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

'수리남'이 근거한 실화에서도 실제로 한 민간인이 마약상의 체포에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윤종빈과 여러 작품에서 호흡을 맞춰온 하정우가 이 역할을 맡을 때부터 이 민간인이 큰 비중을 차지하리라는 점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극중 강인구가 유도 선수 출신이고, 사업 감각이 있으며, 불굴의 의지를 가진 사람이라는 점을 감안한다 해도, 그는 어디까지나 민간인이다. 이 위험한 작전에 자신을 왜 투입시켰냐고 수시로 국정원 요원에게 비꼬듯 말하던 그가, 종반부에는 직접 차를 몰고 도주하는 변요환을 추격한다. 하늘에는 다른 나라의 주권 따위는 아랑곳 않을 정도로 위세 등등한 미국 마약단속국 요원들이 헬기를 타고 따라오는데도, 굳이 강인구가 필사의 추격전을 벌인다. 종반부 하이라이트라는 점, 상업적 콘텐츠의 형식적 특성을 감안한다 해도 이상한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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