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사무라이
야마다 요지의 2002년작 '황혼의 사무라이'가 뜬금없이 넷플릭스에 떴다. 야마다 요지는 김일성도 좋아했다는 '남자는 괴로워' 시리즈로 유명한 감독이다. 일본풍 홈멜로드라마에 정통한 감독으로 알려져 있고, 일본 국내에서 흥행하는 감독이지만, 그러한 이유로 해외의 영화팬들이 굳이 찾아보는 감독은 아니다. 윤제균의 영화를 칸영화제나 일본, 프랑스의 아트시어터에서 상영할 가능성이 적은 것과 비슷한 이유랄까. 1931년생인 야마다 요지는 2019년에도 신작을 발표했다.
'황혼의 사무라이'의 시대배경은 막부시대 말기다. 하급무사 이구치 세이베이가 주인공이다. 이구치의 다섯 살 딸이자 지금은 할머니가 된 여성의 내레이션이 서사를 안내한다. 시기를 짐작해보면 할머니 내레이터는 1930~40년대쯤에 이르러 아버지를 회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영화가 2002년 개봉했으니 레트로의 레트로인 셈이다. 레트로의 레트로라는 것은 이 영화가 그리고 있는 남성, 아버지상이 현대의 그것과 크게 달라 보여도 관객의 이해를 구해보겠다는 장치가 된다.
말이 사무라이긴 하지만, 이구치 세이베이는 사실상 하급 공무원이다. 매일 하는 일은 무예 수련이 아니라 영주의 곡식창고 관리와 장부 정리다. 심지어 이구치는 폐병으로 죽은 아내의 장례식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칼을 팔아버린 것으로 뒤에 확인된다. 노모는 조금씩 기억을 잃어가고, 두 딸은 아직 어리다. 형편이 곤궁해 스스로를 가꿀 시간도 없으며, 온갖 부업을 해 겨우 살림을 살아나간다. 퇴근하는 황혼이 되면 동료 사무라이들은 술을 한 잔 걸치러 가지만, 이구치는 곧바로 집에 가는 바람에 동료들이 몰래 부르는 별명이 '황혼의 세이베이'다.
이구치가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지만 맺어지지 못한 토모에가 이혼한 뒤 오빠 집에 머문다. 토모에는 오빠 친구인 이구치의 집에 나타나 아이들과도 잘 지낸다. 토모에는 이구치와 재혼할 마음이 있는 듯하지만, 이구치는 토모에의 오빠를 통해 거절 의사를 표한다. 풍족하게 살아온 토모에가 가난한 생활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는 염려 때문이었다.
그렇게 재혼 기회를 밀어내고 조용하고 가난하게 살아가려던 이구치에게 시련이 닥친다. 영주가 사망하고 권력다툼이 일어 패배한 세력의 가신들에게 할복 명령이 내려진다. 하지만 그중 가장 실력이 뛰어난 사무라이 요고가 할복을 거부하고 집에 틀어박혀버린 것이다. 상관은 이구치에게 요고의 목을 가져오라고 명한다. 이구치는 실력에 녹이 슬었다며 거부하려 하지만, 거부한다면 관직을 박탈하고 추방하겠다는 엄포에 이구치는 어쩔 수 없이 명을 받들기로 한다. 이구치는 토모에에게 마지막으로 몸단장을 도와달라고 부탁한 뒤 죽을 가능성이 높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나선다.
요고는 영화 속 사무라이 세계 속에서 최고의 실력자로 설정돼있다. 그를 죽이러 간다는 건 곧 자신이 죽는다는 뜻이다. 자살임무지만, 봉건제의 하급무사인 이구치는 이 임무를 거부하기 어렵다. 그건 단지 상관의 명령이기 때문이 아니라, 임무를 거부한다면 가족조차 무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구치가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명을 내린 봉건제는 남은 가족에게 최소한의 생존 수단을 마련해줄 것이다. 명을 거부하면 모두 죽고, 명을 받들면 자기만 죽는 길에 서자, 이구치는 주저 없이 전자를 택한다. 아내가 죽고 없다는 설정 때문에 이구치의 선택은 한층 외로운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으로 비친다.
이구치는 그런 남자다. '출세' 타령하는 부인을 내심 원망했지만 내색하지 않았고, 남은 두 딸에겐 인자하다. 자식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노모에게도 효를 다한다. 재혼을 강권하는 친척 어른에게 할 말은 한다. 세속적인 동료들과 척을 지지는 않지만, 어울리지도 않는다. 늘 마음에 두었던 여성과 연을 맺을 기회가 생겼지만, 행여라도 여성에게 불행의 씨앗을 남길까 봐 주저한다. 궁박한 처지에 내몰린 상황에 대해 누구에게도 원망을 돌리지 않고 그저 받아들인다. 그런 처지 안에서 자신을 의지하는 가족에 대한 의무를 어떻게든 다하려 한다. 그 의무완수의 끝이 죽음이라 할지라도, 이구치는 그저 받아들인다.
기적적으로 혹은 비슷한 처지의 사무라이였던 요고가 이구치를 위해 져줬기 때문에, 이구치는 상처를 입은 채 살아 돌아온다. 이후의 일은 할머니가 된 딸의 내레이션을 통해 간략히 전해진다. 이구치는 토모에와 결혼했지만, 행복은 3년을 가지 못했다. 막부에 속했던 이구치는 관군과의 전투에 나섰다가 전사한다. 이후 토모에는 에도로 가서 일하며 두 양딸을 키워냈다. 토모에도 죽어 이구치의 곁에 묻히고, 이제 부모님의 무덤을 찾은 노령의 딸만이 옛날을 회상한다. "아버지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 중 높은 자리에 오른 분들은 '황혼의 사무라이는 운이 없었다'라고 하셨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아버지는 출세를 바란 분이 아니었고 스스로 운이 없었다고 생각하지도 않으셨을 거다. 아버지는 딸들을 사랑했고 아름다운 토모에 아줌마에게 사랑받았다. 그 삶은 짧았지만 누구보다 행복했을 거다. 그런 아버지가 나는 너무나도 자랑스럽다."
회고의 회고를 통해 만나는 이구치, 남성, 가장, 아버지. 이상적 가부장을 그려내기 위한 지난한 노력일까. 없는 사람을 회상할 수 있을까. 일본(혹은 동아시아) 가부장제가 오랜 세월 그려내온 이상적 가부장의 모습이 어딘가에는 살아있다고 제작진은 믿은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