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잘알과 일알못의 경계에서

레이먼드 챈들러의 '빅 슬립'

by myungworry
Bogart_and_Bacall_The_Big_Sleep.jpg 하워드 혹스 감독의 영화 '빅 슬립'(1946)에서 필랍 말로(험프리 보가트)와 비비안 스턴우드(로렌 바콜)

챈들러의 '빅 슬립'을 읽었던가. 필립 말로가 등장하는 책을 읽은 거는 확실한데, 그것이 '빅 슬립'이었나. 아니면 '기나긴 이별'이었나. 둘 다 읽었나. 모르겠다. 필립 말로가 하루의 고된 일과를 마치고 단골 바에 가서 김릿을 시켜 마시는 장면이 인상적이어서 언젠가 따라했는데 막상 마셔보니 레몬소주 같아서 꽤 실망했던 기억만 난다. 온갖 거칠고 지저분한 일을 하며 간신히 목숨을 건지고 돌아와 마시는 술이 레몬소주라니.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으로 '빅 슬립'이 나왔기에 읽었다. 잘 읽히는데 자꾸 어딘가에서 걸린다. 구체적으로 말해 한 챕터는 잘 읽히는데, 다음 챕터로 넘어가면 속도가 처진다. 독서의 집중력이 떨어졌나. 물론 떨어진 지는 오래됐다. 아무튼 이 책도 크게 봐서 '추리소설'이라 할 수 있을텐데, 누가 누구를 왜 죽였는지 자꾸 잊어버린다. 여러 사람이 죽어나가는데 이런 일이 벌어지니 뒤로 갈수록 헷갈리고 자꾸 앞 페이지를 찾아보게 된다. 내 이해력이 떨어졌나. 챈들러의 플롯이 복잡하고 정교한 것인가. 나중에 다 읽고 위키피디아에서 줄거리를 다시 꼼꼼히 읽어봐야 하나. 여러 생각을 하면서 끝까지 읽어내려갔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해설이 나를 위로해줬다. 챈들러는 여러 싸구려 잡지에 단편을 연재해 글쓰기 실력을 길렀고, 그렇게 모은 글과 실력을 종합해 51세에 '빅 슬립'으로 장편 데뷔했다. 이 과정에서 자기가 발표했던 단편 몇 편을 고스란히 넣었다. 서로 관련 없는 몇 개의 단편이 하나의 장편으로 묶인 것이다. 그래서 무라카미 하루키도 이렇게 적었다.


"나도 이 책은 몇 번이나 되풀이해 읽고 이렇게 번역까지 했지만, 그런데도 썩 순순히 납득할 수 없는 대목이 몇 군데 있다. 누가 줄거리를 요약해보라고 하면 꽤나 골머리를 앓는다. 아무리 봐도 나중에 억지로 갖다붙였지 싶은 헐렁한 설명도 있다. (...) 이 작품을 영화화한 하워드 훅스 감독이 원작자 챈들러에게 전보를 보내 '스턴우드 집안의 운전사를 살해한 범인은 대체 누굽니까?'라고 물었다는 일화가 너무나 유명한데('나도 모르죠'가 저자가 보내온 답이었다.), 이 책에는 이렇게 무심코 저자에게 진상을 캐묻고 싶어지는 부분이 몇 군데쯤 있다."


물론 무라카미는 "'만사가 논리적으로 명쾌해도 이야기로서 재미는 그저 그런' 소설보다는 '제대로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은 더러 보여도 아무튼 이야기 하나는 재미있는' 소설이 당연히 독자에게는 훨씬 매력적"이라며 챈들러를 치켜세운다.


Raymond_Chandler_(Lady_in_the_Lake_portrait,_1943).jpg 레이몬드 챈들러(1888~1959)


난 챈들러의 다른 면을 치켜세우고 싶다. 캐릭터 창조력이다. 필립 말로는 불멸의 캐릭터다. 하드보일드 탐정의 전형이 된 인물이다. 이 소설 속 말로의 대사는 지금 시점에서 보면 꽤나 아슬아슬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재치와 냉소가 넘친다. 20세기 중반 이후 할리우드 영화에는 '유사 필립 말로' 캐릭터들이 숱하게 등장했다. 아마 지금도 누군가는 필립 말로 같은 캐릭터가 등장하는 시나리오를 쓰고 있을 것이다.


말로의 행동 중 직업 윤리 관점에서 흥미로운 건 그의 '일알못'과 '일잘알'의 모호한 경계다. 말로는 분명 유능하다. 유능하면서도 돈을 잘 못버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가 유능하지 않았으면 스턴우드 장군 같은 부자가 은밀한 임무를 거액에 맡길 이유가 없다. 그런데 어떤 면에서 말로는 유능하지 않다. 때로 의뢰인이 원치 않는 일을 독단적으로 해버린다는 측면에서다. 정확히 말해 원치 않는다기보다는 내심 원하긴 하지만 차마 원한다고 말할 수 없는 일을 말로는 알아서 해버린다. 의뢰인은 이런 말로의 행동에 상처를 입고 심지어 약속했던 돈을 주지 않겠다고 말할 수도 있다. 아마 법적으로 그렇게 해도 상관 없을 것 같다. 피의뢰인이 일을 절차대로 진행하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말로는 상관하지 않는다. 의뢰인이 말한 대로 일을 어정쩡하게 풀어놓은 뒤 거액을 받고 빠지기보다는, 일의 진상을 끝까지 파헤치고 계약 파기를 무릅쓴다. 이건 일알못인가, 일잘알인가. 조직이 크고 위계가 엄한 회사라면 일알못이지만, 덩치가 작고 창의적인 일처리가 허용되는 회사라면 일잘알일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있으면 조직은 크게 성장할 수도, 큰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물론 말로는 개인사업자기 때문에 이런 상상과는 상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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