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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가 시가 될 때

윌리엄 글래슬리의 '근원의 시간 속으로'

by myungwo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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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은 '덕후' 기질이 있다. 산업적 가능성과 연계된 분야도 있겠지만, 많은 분야는 그저 지적 호기심을 채우기 위한 것이다. 윌리엄 글래슬리 같은 지질학자의 연구가 돈이 될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는가. '근원의 시간 속으로'(더숲)은 글래슬리가 두 명의 동료와 함께 그린란드로 4주간 탐사를 떠난 이야기다. 기후가 허락하는 한 계절을 틈타, 광대한 피오르가 펼쳐진 얼음과 돌의 땅에 머문다. 이곳에서 지구의 대륙이 언제 어떻게 충돌하고 생겨났는지 표본을 채취하고 살핀다. 한때 이 지역이 거대한 대륙의 충돌과 그로 인한 산맥의 융기를 보여주는 지대라는 것이 이들의 가설이다. 수십억 년 전부터 수억 년 전까지 지속적으로 일어난 일이다. 이에 대한 반대 학설도 있다. 글래슬리와 동료들은 증거를 통해 자신들의 학설을 지탱하려 한다. 지질학계 내부에서는 매우 치열하지만, 지질학계 바깥에서는 거의 관심이 없는 주제일 것이다.

평소 생각지도 않았던 주제지만, 글래슬리는 지질학 탐사 이야기와 광대한 야생 속에 내쳐진 인간의 처지를 엮어 좋은 책을 펴냈다. 글래슬리가 묘사하는 그린란드의 풍광과 감상이 숭고하다. 갈매기, 매, 모기, 청어, 이끼류 등 익숙한 생명체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지역에는 인간의 흔적이 없다. 이들이 수십 억년만에 처음으로 인간의 흔적을 남기기고 하다. 암석을 깨서 채취하면, 그 암석에선 수십 억년 된 결정의 냄새가 난다. 거의 외계 행성 탐사에 진배없는 상황이다. 의외로 책에는 이미지가 거의 실려있지 않다. 관련 다큐멘터리를 찾아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우리는 야생의 표면을 따라 이동하고 있다. 우리의 이해를 넘어서는 힘이 만들어낸 이 세상은 죽음에 취약하다. 보트에서 내던졌더라면 순식간에 물에 휩쓸려 저세상으로 갔을 것이다. 이곳에서 생존이란 우연들의 집합에 불과하다.

운동량의 단순한 전달, 원자의 떨림에 대한 약간의 연손실, 서로 다른 지각판이 스쳐지나가는 역학 등 수학 방정식의 물리적 현실은 조석 속에 흐트러진 자갈과 전단된 축절물의 작은 은빛으로 발현되어 있었다. 자연이 써내려간 단순한 진술들 속에 담긴 풍요로움이 나를 경외감으로 채웠다.

내 근육조직을 맛본다면 무슨 생각이 들까? 그 맛이 상기시키는 것에서 이 세상에 대한 나의 경험을, 내가 무엇을 찾고 어떻게 사는지를 알 수 있을까? 바다표범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는 풍경이나 깨끗한 물, 하늘을 바라보는 저마다의 방식이 있다. 생존과 관련된 진화론적 지식에 기인한 방식이다. 우리는 이 같은 내재된 지식과 교훈의 총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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