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영의 '믿음에 대하여'
몇 달 전 '대도시의 사랑법'에 이어 이번에 박상영의 신작 '믿음에 대하여'(문학동네)를 읽었다. 4편의 단편이 실렸는데, 등장인물들이 연계된 연작 소설집이다. 두 게이 커플이 있고, 이들의 주변 인물도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성정체성을 세상에 드러내고 소수자로서의 권리를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아니다. 커뮤니티 내에서 사랑을 찾고, 커뮤니티 바깥의 직장에서는 그곳 문화에 적응하려는 사람들이다. 전작과 다른 점은 후자에 조금 더 방점이 찍힌 듯하다는 것이다. 인물들은 번듯한 방송사의 앵커이거나, 이름 들으면 알만한 대기업 사원이거나, 잘 나가는 사진작가였다가 이태원에서 이자카야를 운영하는 사장이다. 특히 앵커 김남준과 회사원 고찬호, 유한영의 묘사는 현대 한국의 20~30대 직장인이 겪는 사회적 행태들을 절실하게 보여준다. 어떤 면에서는 '장류진풍'이라고 하겠다마는, 장류진보다 조금은 더 씁쓸한 맛이다. 인물들이 가진 소수자로서의 정체성 때문일 수도 있고, 아파트, 승진 기회, 사회적 지위 같이 인물들이 잡으려 하지만 좀처럼 잡히지 않는 가치들을 더욱 절박하게 그려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러한 가치들에 대한 집착과 조금 떨어져 있는 이자카야 사장 임철우 이야기가 다른 세 편과 살짝 달라 보이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인 듯하다. 임철우는 다른 등장인물들보다 나이가 조금 많아 보이는데, 그래서 임철우의 아래와 같은 독백에는 후회, 관조, 달관이 알아볼 수 없게 섞여 있다.
실패도 배신도 겪지 않았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었다. 과거나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게 내 행복의 비결이라고 믿었었는데. 사실 나는 후회하는 것도, 걱정하는 것도 두려워 생각을 멈춰버린 소금 기둥 같은 존재에 불과한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