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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의 첨단

에스에프널 2022 vol.2

by myungwo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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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의 해외여행(일본 교토, 오사카)을 가기 위해 들어서 귀국 후에 마저 읽었다. vol.1과 2로 구성돼 있는데, 2에는 'For SF MANIA'라고 적혀 있다. 십수 년 전부터 종종 SF를 읽었어도 '마니아'라고 하기엔 쑥스러운 독자지만, 그래도 이런 책을 읽는 목적은 첨단의 트렌드를 재빠르게 흡수하기 위한 것이기에 용기를 냈다.


완독 결과, '너무 첨단'인 글도 있었다. SF 독서의 어려움 중 하나는 작품 속 세계에 몰입하기 전에 약간의 문턱을 넘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소설에는 문턱이 있지만, 리얼리즘 소설은 그 문턱이 현실 세계와 밀착해 있다. SF는 다르다. 개성 있는 여러 작가가 제 각각 설정한 세계관을 몇 페이지 안에 재빨리 흡수하고 그 세계의 논리를 당연히 여겨야 한다. 이 작품 속 세계에는 성이 수시로 변하는 종족이 있다고 하면 그렇게 알아야 하는 것이고, AI가 특이점을 넘어 인간을 제거할 능력을 갖췄다고 한다면 또 그렇게 알아야 한다. 작가가 그런 설정을 개요로 그려서 설명하는 것도 아니고 조금씩 펼쳐놓는 것이어서, 이런 설정을 빨리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여러 작품들을 읽다 보면 어느 정도 겹치는 설정이 있겠지만. 최근 SF의 트렌드를 속속들이 안다고 할 수 없기에, 어떤 단편들은 끝까지 읽어도 이해가 힘들었다.


맨 처음에 수록된 메그 앨리슨의 '알약'이 단연코 재미있었다. 사람의 몸무게를 순식간에 빼주는, 그러나 부작용이 있어 열에 하나는 사망에 이르게 하는 알약이 보편화된 세계를 그린다. 이 세계에선 위험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알약을 복용한다. 그래서 뚱뚱한 사람들은 별종 취급을 받는다. 대부분의 옷은 날씬한 사람의 몸에 맞게 단일 사이즈로 나오고, 강의실 의자 역시 날씬한 사람들만 앉을 수 있게 제작되고, 뚱뚱한 사람은 보험 가입도 할 수 없다. 이런 사회에서 알약 먹기를 끝까지 거부한 여성 주인공의 운명을 그린다. 운명이 마냥 흉측한 것은 아니어서, 이 여성은 나름의 흥미로운 삶을 살아간다.


리치 라슨의 '오징어 퀴니가 클로부차를 잃어버린 사연'은 가상현실로 범죄연습을 반복해 모의하던 주인공이 실전에 들어가 가상과 현실을 구분 못해 당황해하는 대목이 흥미로웠다. 티몬스 이사이아스의 'GO, NOW, FIX'는 인공지능을 장착한 '베개'가 재난상황의 인간을 구해내는 이야기다. 물론 유머러스하다. 앨리스테어 레이놀즈의 '반짝반짝 빛나는...'은 반대로 인공지능을 장착한 로봇들이 시스템상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인간을 희생양 삼는 이야기다. 역시 유머러스하다. 토치 오녜부치의 '배상금을 지불하는 방법: 다큐멘터리'는 미국 내 흑인에 대한 경찰의 폭력과 이에 대한 배상법안의 사고실험이다. 마냥 PC한 결론을 내리는 것은 아니라 흥미로웠다. 모린 맥휴의 '노란 색이 있는 현실'은 사고로 나와 세상의 경계가 무너진 쌍둥이 언니를 바라보는 동생의 이야기다. 사고 내용과 경과가 자세히 나오지 않아. 장편의 예비적 설정처럼 읽히기도 하지만 이 단편 자체로도 읽기에 어려움은 없었다. 진 두셋의 '슈뢰딩거의 이변'은 인과가 무너진 우주공간의 공포 이야기다. 피와 살점이 튀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곰곰 생각해 보면 엄청나게 무섭다. 나디아 아피피의 '바레인 지하 시장'은 암으로 죽어가는 할머니의 심경을 그린다. 이 할머니는 가상현실을 통한 임사 체험을 자꾸만 하고, 아들과 며느리는 그것이 못마땅하다. 결론은 적절히 감정적이다. 최근 내가 읽은 한국의 여성 SF 작가들 감성과 가장 비슷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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