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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적 예술'이라는 형용모순

영화 '타르'

by myungworry
f0e935e5e4b0ed074e4d968a63e55f86.jpg '타르'에서 리디아 타르는 새로 입단한 첼리스트 올가에게 반한다.

토드 필드 감독의 영화 <타르>는 베를린필 최초의 여성 수석 지휘자 리디아 타르(케이트 블란쳇)가 절정에서 추락하는 과정을 그린다. 물론 리디아 타르는 가상인물이다. 몇몇 여성 지휘자가 분투하고 있지만 지휘자의 세계는 여전히 확실한 남초다. 타르는 커밍아웃한 레즈비언이자 교향악단 내 제1 바이올린 주자인 샤론과 파트너이고, 둘 사이엔 입양한 딸도 있다. 이러한 정체성을 가진 타르가 극단적 남초 세계인 클래식 지휘자가 되기 위해 어떠한 장애물을 돌파했는지 대략적으로 짐작할 수 있다. 실제 타르가 샤론에게 자신들이 커밍아웃했을 때 거의 매장당했을 뻔했다고 회상하는 대목이 있다.

타르는 소수자 정체성을 가졌지만 그의 예술관은 전통적이다. 레너드 번스타인에게 지휘를 배웠고, 전임 베를린필 지휘자 안드리스에게 깍듯하게 대한다. (안드리스를 위해 사비로 몰래 기사를 고용해 줄 정도다) 영화 초반부 저널리스트와의 대담에서는 "여성으로서 어려움은 느끼지 않았다"고 말한다. 남초 집단 속 여성의 권익을 위해 목소리를 내주길 원했던 다른 여성 지휘자들에게는 아쉬움을 남길 법한 발언이다. 그래도 타르의 발언은 아마 사실일 것이다. 타르는 소수자 우대 정책으로 베를린필 수석 지휘자가 된 것이 아니라, 실력으로 됐으니까. 그것도 아마 남성 경쟁자를 제칠만한 압도적인 실력이었을 것이다. 줄리어드에서 학생들에게 강연할 때는 "시스젠더 백인 남성 바흐의 음악에 공감하지 못한다"는 한 학생을 망신주기도 한다. 여성 지휘자의 창작, 지휘 역량을 돕기 위한 아코디언 재단에는 "더 이상 여성 우대 정책을 펼 필요가 없다"고 제안하기도 한다.

물론 토스카니니의 시대는 아니기에, '독재적'이고 '권위적'인 지휘자는 운신의 폭이 좁다. 예술이 집단의 합의로 성취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문제다. 타르는 단원 및 스태프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는 척 하지만 결국 결국 자신이 미리 정한 결론으로 향하도록 여러 장치를 마련한다. 아직 정식 단원으로 인정받지 못한 러시아 출신 첼리스트 올가에게 엘가 협주곡을 맡기기 위해 유명무실했던 오디션 과정을 부활하는 것이 한 예다. '민주주의적 예술'이란 형용모순.

타르는 그렇게 권력을 행사한다.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민주주의자처럼 보이고 싶어 하면서도, 가진 권력을 최대한 행사한다. 악단의 레퍼토리나 연주에서만 권력을 행사하면 좋았겠지만, '베를린필 수석 지휘자'라는 명성으로 악단 외부에도 영향력을 가한다. 그 영향력은 때로 매우 사적인 영역으로도 행해진다. 자신과 악연이 있었던 젊은 여성 지휘자의 앞길을 막기 위해 갖가지 수를 쓴다. 눈에서 벗어난 사람은 어떻게든 짓밟으려 하는 것이다. 마치 그 사람이 자신의 지위에 영향을 미치기라도 하려는 듯이.

타르는 결국 몰락한다. 타르는 권력의 사적 남용과 그에 따른 파국적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 타르는 광기에 휩싸인다. 자기 대신 포디엄에 오른 옛 친구를 밀쳐내고 때리는 장면은 흥미롭지만 다소 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타르는 동남아 국가로 이주해 그곳에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한다. 가벼운 마사지를 받기 위해 업소를 찾았다가 낯선 경험을 한다. 거대한 유리창 너머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방에 있는 수십 명 안마사 중에서 직접 안마받을 사람을 번호로 고르는 형식이다. 이것이 성매매를 암시하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타르는 이 기괴한 마사지 업소의 형식에 기겁해 도망쳐 나와 구토한다. 이 업소의 형식은 타르가 은밀히 했던 권력 행사를 공공연히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일까.

마지막 장면에서 타르는 게임 몬스터 헌터 음악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를 지휘한다. 말러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타르는 베를린필 시절과 마찬가지로 열심인 것처럼 보인다. 타르와 몬스터 헌터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바라보는 코스프레 플레이어들의 기괴한 모습과 함께 영화는 끝난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엔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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