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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겸허히 만드는 과학책

롭 던의 '미래의 자연사'

by myungworry

'미래의 자연사'(까치)는 근래 가장 재미있게 읽은 과학책이었다. 롭 던은 작가나 저널리스트 기반이라기보다는 학자 기반 저자로 보이는데, '미래의 자연사'는 학술적으로 엄정하면서도 읽기가 어렵지 않다.

진화법칙을 대표로 몇 가지 생물법칙이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결정할지 차근차근 설명한다. 모든 법칙이 매우 상식적이다. 너무 상식적이라 '법칙'이라 부를만한지 망설여지기까지 한다. 물론 그런 상식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사람도 종종 있긴 하다.

근래 과학책들의 결론은 대체로 기후위기에 대한 염려이고, 이 책 역시 다르지 않다. 다른 기후위기 책과 조금 다른 점은 기후위기가 인간과 그에 근접한 종의 몰락을 가져올 뿐, 생명의 몰락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다는 것이다. 어떤 바이러스는 화산, 온천 같은 곳에서도 살 수 있다. 인간이 살기 어려운 극한 환경이 오히려 이런 바이러스에겐 살기 좋은 환경이 된다. 신의 전능함을 찬양하는 종교 서적만이 아니라, 이 같은 과학책도 인간을 겸허하게 한다.



인간은 지구의 운명을 바꿀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생명체지만, 그 역시 생물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응용생태학자 롭 던은 <미래의 자연사>에서 생물법칙에 기반해 인류가 맞이할 미래를 살핀다. 던이 소개하는 생물법칙은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설득력이 있다. 게다가 최신 연구성과를 반영해 현대 생물학의 흐름까지 짚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탈출법칙은 “어떤 종이 포식자나 기생충, 천적을 피할 때 이득을 얻는다”는 것이다. 인간은 덥고 습한 기후에 사는 말라리아 원충에 취약했으나, 아프리카를 빠져나와 좀 더 춥고 건조한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말라리아로부터 탈출할 수 있었다. 탈출법칙은 기후변화로 인한 생태계 변화에도 적용할 수 있다. 세계 기온이 올라가 미국 마이애미가 멕시코 아열대 지방 기후와 비슷해진다고 가정하면, 멕시코에 넘쳐나는 말라리아 원충도 마이애미로 이사할 가능성이 있다.

진화법칙은 갈라파고스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오늘날 대부분 인류가 거주하는 도시에서도 진화는 쉽게 목격된다. 도로 중앙 분리대, 아파트 화단 등은 갈라파고스 같은 섬 역할을 해 새로운 종이 진화하는 환경이 된다. 쥐, 모기 등 도심의 생명체가 지상과 지하에서 전혀 다른 형태로 진화한 사례도 관찰됐다.

인간의 기술이 기후위기와 생태계 파괴를 벗어날 방법을 제공하리라는 시선도 있지만, 저자는 이에 부정적이다. 저자는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래의 기술을 기다리기보다는, 이미 제공된 환경의 혜택을 저버리지 말자고 제안한다.

인간 중심주의에 매몰되는 걸 피하기 위해 이렇게 떠올리면 좋겠다. “나는 이름 없는 종의 세상에 사는 이름 가진 종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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