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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시신을 만진다

헤일리 캠벨 '죽은 자 곁의 산 자들'

by myungworry

"해부 책임자부터 사산 전문 조산사까지, 죽음의 일꾼들과 함께한 뜨거운 현장 기록"인 '죽은 자 곁의 산 자들'(시공사)은 물론 호기심에 집어 들었다. 양자역학을 연구하는 물리학자, 금리를 결정하는 경제관료, 주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최고경영자의 직업적 삶도 궁금하지만, 장의사, 해부책임자, 사형집행인, 범죄현장 청소부 같이 죽음을 직접 접하는 직업인들의 삶이 이들보다 덜 궁금할 이유가 없다. 누구나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죽는데, 시신은 영안실, 화장장, 납골당 등 유족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깔끔하게 처리된다. 로봇 장의사가 나타나지 않는 다음에야, 인간이 이 모든 일을 처리할 것 아닌가.

호기심만으로 읽었다면 궁금한 몇 개 챕터만 재빨리 살폈겠지만, 의외로 통독했다. 장의사, 해부 책임자에서 시작해 시신 방부처리사, 사산 전문 조산사를 거쳐 인체 냉동 보존 연구소 임직원에 이르는 과정이 은근히 짜임새 있었다. 저자 헤일리 캠벨은 기자다. 해당 직역의 사람들을 섭외해 인터뷰하고 현장을 참관하는 방식으로 글을 썼다. 어린 시절부터 죽음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는 개인사적인 이야기도 살짝 풀어놓는다. 대체로 객관적인 서술을 하던 그는 해부병리 전문가의 작업 중 아기의 시신을 본 뒤에 흔들리는 감정을 드러낸다. 이미 수백 구의 시신을 봐서 아무렇지도 않을 것 같다고 예상했지만, 아기의 시신은 다른 수백 구의 성인 시신과 전적으로 달랐던 모양이다. 생명을 잃은 아기의 시신이 씻겨지는 과정에서 욕조 거품 안으로 가라앉는 모습을 본 뒤 이 장면을 두고두고 떠올린다. 취재 순서는 알 수 없지만 다음 챕터에 사산 전문 조산사가 등장한다는 것은 이 같은 감정의 내러티브를 의식한 편집으로 보인다. "죽은 사람의 나이에 상관없이 애도하는 사람이 느끼는 슬픔의 깊이를 예상하거나 측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아기의 죽음은 그만의 고유한 영역이 존재한다." 난 사산 전문 조산사라는 직업이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 이 직업은 문자 그대로 '극한직업'일 것이다.

저자는 마지막 챕터로 마련된 인체 냉동 보존 연구소 임직원을 만나러 가면서 다소 기괴한 믿음을 가진 괴짜들을 만나지 않을까, 그들이 이상한 말을 하면 표정관리를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한다. 기우였다. 이곳의 손님이나 직원 모두 지극히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사람들이었다. 암으로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인터넷에서 찾은 냉동 보존술로 미래에라도 치료될 희망을 품은 채 죽은 14살 소녀의 선택을 누가 비웃을 수 있을 것인가. 평균 수명에 훨씬 못 미친 채 여러 이유로 죽은 아기, 어린이, 청소년, 청년의 죽음이 유독 가슴 아픈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매일 시신을 얼리려는 사람의 상담을 받거나 실제 작업하는 한 여성은 의외로 자신의 시신을 얼리는 계약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기술의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저는 가능하다고 믿거든요. 다만 제 개인의 선택이지요. 다시 삶으로 돌아오고 싶은지 확실하지 않을 뿐이에요. 삶은 힘들고 고통스러우니까요." 저자는 이 대답을 "쓸쓸하다기보다는 현실적인 목소리였다"고 회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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