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작게,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미야케 쇼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by myungworry
49f5d2afef9c030bbb0d060d219bcb71b497239b

스토아 철학에 관심을 두고 여러 책을 천천히 읽고 있다. 이론이나 개념으로서의 철학이 아니라, 삶에 대한 자세, 태도를 익히는데 관심이 있다. ('처세'라고 쉽게 말해도 반박하진 않겠다. 사전적 개념의 '처세'란 "사람들과 사귀며 살아감"이다.) 영화를 대하는 요즘의 방향도 비슷하다. 삶의 자세를 다룬 영화가 더 많은 울림을 준다.

오랫동안 생각하다 방금 본 미야케 쇼의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역시 그런 영화였다. 이제는 거의 사라진 매체인 16미리 필름으로 찍은 영화다. 디지털로 구현할 수 없는 색감과 질감인지 판단할 눈은 없지만, 도쿄 구시가지의 인서트샷, 낡은 복싱 체육관에 드는 오후 햇빛에 먼지 떠도는 모습, 특히 영화에 나올 때마다 어쩐지 정신을 못 차리게 되는 매직 아워의 풍경 같은 것에선 필름의 아우라가 강력했다.

실제 인물의 이야기를 극화했다고 한다. 청각 장애 여성 복서, 대를 이어 복싱 체육관을 운영했지만 건강이 날로 쇠약해지는 관장, 폐관을 앞둔 낡은 체육관, 폐관을 즈음해 잡힌 마지막 경기 등의 키워드로 짐작할 수 있는 줄거리지만, 영화를 이끌어가는 감독의 손길은 예상을 벗어난다. 가난한 여성 복서의 감동적 투쟁기 같은 것은 없다. 게이코는 청각장애인이며 프로복서이며 낮시간엔 호텔 청소를 한다. 관장의 평가로는 작고 리치가 짧으며 느려서 권투선수로서의 타고난 재능은 없지만, 인간적인 실력이 있는 선수다. 정직하고 바르다. 그렇다고 대중문화 속 장애인 스테레오타입처럼 마냥 선량한 사람은 아니다. 가끔 주변 사람에게 짜증 내고, 차츰 권투에 지쳐간다. 이 대목이 중요하다. 감독은 게이코가 왜 지쳐가는지, 권투를 그만둘 결심을 하는지 보여주지 않는다. 아니, 결정적 계기가 없다고 봐도 좋겠다. 오래 사귄 연인과 이별하지 않더라도, 회사에서 해고당하지 않더라도,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지 못했더라도, 우리는 살면서 지친다. 삶에 지속적인 에너지를 충전해 주는 샘이 있는 것은 아니며, 지금처럼 하면 언젠가 더 좋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보장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게이코는 청각장애인이라서가 아니라,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지친다. 비록 길에서 어깨빵한 무례한 남성의 욕설을 듣지 않을 수 있어서, 그래서 자신의 페이스대로 살아갈 수 있다 하더라도, 게이코는 지친다. 의지를 조금씩 잃어버린다.

게이코를 지키는 건 루틴이다. 게이코는 훈련 일지를 쓴다. 입원한 관장을 문병 온 게이코가 남기고 간 훈련 일지를 관장의 부인이 관장에게 읽어준다. 일지에는 날짜, 날씨와 그날의 훈련, 훈련 후의 느낌이 성실히 적혀있다. 로드워크 10킬로미터, 쉐도우 3라운드, 미트 3라운드, 위빙 2라운드... 훈련의 구성은 조금씩 다르지만, 게이코는 매일 꾸준히 훈련하고 적는다. 호텔 청소일도 마찬가지다. 경기를 마치고 잔뜩 상처 난 얼굴로도 일을 한다. 돈이 필요해서만은 아니다. 쉬면 루틴이 깨지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인 'Small, Slow But Steady'는 게이코, 그리고 많은 사람에게 필요한 삶의 자세를 함축한 말이다. 게이코는 마지막 경기에서 흥분해 잔뜩 얻어맞고는 KO 된다. 게이코는 패배하고, 권투도장 사람들은 마지막 낡은 짐을 나른 뒤 텅 빈 체육관에서 웃으며 기념사진을 찍는다. 게이코는 매일 로드워크하는 둑방에서 우연히 마지막 시합 상대를 만난다. 역시 아직 얼굴 상처가 회복되지 않은 상대는 작업복을 입고 있다. 건설노동을 하는 듯한 상대는 "지난 시합에서 감사했다"며 인사한다. 모두가 작게, 천천히, 꾸준히 살고 있다. 링 위에서든 아래서든. 게이코도 인사한 뒤 둑방 위로 올라가 로드워크를 시작한다. 게이코의 실루엣은 행인 사이로 사라진다. 너무나 아름다운 엔딩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토마스 만 vs JG 밸러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