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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윌리엄스 '부처스 크로싱'

by myungwo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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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내게 '인생 소설'을 묻는다면 일단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1965)를 든다. 이 책이 작가 생전은 물론 사후에도 오랜 시간 주목받지 못했다는 점이 너무 의아하다. 윌리엄스가 '스토너'를 선보이기 전에 낸 '부처스 크로싱'(1960)도 걸작이다. 이 책 역시 왜 주목받지 못했나. 세상의 훌륭한 작품이 모두 인정받는 것은 아니며, 심지어 아직 엄청난 작품이 어딘가에 묻혀 있을 수 있으며, 지금 주목받는 작품이라고 모두 시간을 견디는 것은 아니라는, 그런 당연한 사실들을 존 윌리엄스의 책을 통해 새삼 깨닫는다.

'부처스 크로싱'은 일종의 '안티 서부극'이다. 1870년대 초, 안락하고 안정적인 도시 생활과 학업에 염증을 느낀 하버드 중퇴생 앤드루스가 자연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서부의 캔사스 시골 마을 부처스 크로싱에 와서 들소 사냥꾼 밀러 무리에 합류해 머나먼 사냥길을 떠나는 내용이다. 미국 히피 청년의 한 세기 전 버전 같아 보이는 앤드루스의 모험이 낭만적이고 아름답게 끝날 리 없다. 죽을 위기를 넘기고 들소떼를 마주한 밀러는 보이는 들소를 모두 잡겠다는 집념 혹은 광기에 빠져 목적을 알 수 없는 사냥에 빠진다. 밀러의 과욕에 일당은 겨울 내내 산에 갇혀 무시무시한 추위를 겪는다. 추위에서 빠져나와 부처스 크로싱 혹은 동부로 돌아온 앤드루스는 한 뼘 성장한다, 는 것은 흔한 성장 소설의 흐름이겠지만 시니컬한 '스토너'의 작가는 그렇게 쓸 생각이 없다. 애써 모은 들소 가죽은 강에 휩쓸려 모조리 날리고, 몇 달 만에 돌아온 부처스 크로싱은 몰라보게 쇠락했다. 들소 가죽 경제 자체가 망한 것이다. 부처스 크로싱을 찾은 앤드루스를 회유해 자신의 회계사로 삼으려던 맥도널드는 돌아온 앤드루스에게 말한다.


"젊은 사람들은." 맥도널드는 업신여기듯 말했다. "찾아낼 무언가가 있다고 늘 생각하지."
"네."
"글쎄, 그런 건 없어." 맥도널드가 말했다. "자네는 거짓 속에서 태어나고, 보살펴지고, 젖을 떼지. 학교에서는 더 멋진 거짓을 배우고. 인생 전부를 거짓 속에서 살다가 죽을 때쯤이면 깨닫지. 인생에는 자네 자신, 그리고 자네가 할 수 있었던 일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걸. 자네는 그 일을 하지 않았어. 거짓이 자네에게 뭔가 다른 게 있다고 말했기 떄문이지. 그제야 자네는 세상을 가질 수 있었다는 걸 알게 되지. 그 비밀을 아는 건 자네뿐이니까. 하지만 그때는 너무 늦었저. 이미 너무 늙었거든."


'스토너'의 주인공인 평범한 문학 교수는 맥도널드의 조언을 미리 새겨 들은 사람이었나. 그래서 인생의 범위 바깥에 찾아낼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은 채, 할 수 있었던 일을 했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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