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빌 워: 분열의 시대'
**스포일러 있음.
기자가 등장하는 한국의 영화, 드라마는 대체로 낯간지러운 편이다. 기자가 좋은 사람으로 나오든 나쁜 사람으로 나오든 마찬가지다. 정의로운 기자든, 적당히 타협하지만 결국엔 정의를 추구하는 기자든, 애초에 직업윤리가 없는 기자든, 한국 영화, 드라마의 기자는 별로 기자 같지가 않고, 그저 사람들이 기자라고 믿고 싶어 하는 캐릭터일 뿐이다. 미국 영화는 조금 다르다. 스필버그의 '더 포스트'나 케빈 맥도널드의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가 그랬다. 이런 영화는 기자들이 가진 다른 언론사와의 경쟁의식, 정보에 대한 독점욕을 강조한다. 삼성이 애플과, 현대차가 GM과 경쟁하면서 더 좋은 스마트폰과 차를 만들 듯, 기자들도 다른 기자들과 경쟁하며 더 좋은 기사를 쓴다.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는 대체로 이 사실을 간과한다. 그저 정의감으로 똘똘 뭉쳤거나, 가짜 기사로 명성을 추구할 뿐이다.
알랙스 가랜드의 '시빌 워: 분열의 시대' 역시 좋은 기자 영화다. 캘리포니아와 텍사스의 '서부군'이 연합해 정부군과 대항하는 가상의 내전 상황을 그린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군인, 정치인, 희생당하는 시민이 아닌 기자다. 베테랑 종군기자 3명과 신참 1명은 워싱턴 DC에 틀어박힌 대통령을 인터뷰하기 위한 길을 떠난다. 그 상황에서 내전의 풍경을 목도한다. 전선에 무슨 일이 있냐는 듯 평화로운 척 사는 동네도 있고, 난민 캠프도 있고, 지휘부가 붕괴해 상대가 적인지 아군인지 모르는 채 숨 막히는 저격수 대결을 벌이는 지역도 있고, 민간인을 학살한 뒤 은폐하려는 군인도 있고, 예고편에도 나왔듯 "난 미국인입니다"라도 답하자 "어떤 미국인이냐?"라고 묻는 군인도 있다. (이 군인은 미주리, 콜로라도, 플로리다 같은 곳에서 온 미국인은 "그게 진짜 미국"이라고 하지만, 다른 곳에서 온 사람은 죽인다.)
일종의 '기자 로드무비'라 할 수 있는 '시빌 워'는 전통적 기자들이 갖춰야 할 태도를 서사에도 그대로 적용한다. 기자는 개입하지 않고 관찰한다. 답하지 않고 질문한다. 선언하지 않고 전달한다. 이 영화는 왜 내전이 일어났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대통령이 정확히 어떤 사람인지, 왜 캘리포니아와 텍사스가 연합했는지도 알 수 없다. 그저 극심한 정치적 양극화로 심리적 분열이 일어났고 이것이 물리적 내전 상황으로까지 치달았다는 사실만 전제한다. 서부군이 옳은지 정부군이 옳은지도 알 수 없다. (주인공 기자들이 대체로 서부군의 뒤를 따르기에, 그리고 워싱턴 DC에서는 기자들을 보는 족족 죽인다는 말이 돌기에, 서부군이 더 많이 등장하긴 한다.)
영화에는 여러 종류의 전투 장면이 담겼다. 낡은 건물을 둘러싼 소규모 전투, 평원에서의 저격수 대결, 워싱턴 DC 시가전, 무엇보다 백악관 진격 장면이 인상적이다. 백악관 복도에서 최후의 경호원들과 서부군 정예 요원은 총격전을 벌인다. 투항해 중립지대로 가려던 대통령의 구상은 무산되고, 서부군은 숨어있던 대통령을 쏘아 죽이기 직전이다. 이 순간 기자가 뛰어들어 막아선다. 대통령을 살리려는 것이 아니다. 마지막 한 마디를 듣기 위해서다. 대통령은 멋진 말을 하지 않는다. "살려주세요." 기자는 답한다. "그걸로 충분해요." 군인들이 사살된 대통령 주변에서 웃으며 찍은 기념사진이 엔드 크레디트에 나온다.
가끔 기자는 감정이 없는 사이코패스처럼 보이기도 한다. '정의 같이 달달한 것'('내부자들' 대사)을 좇기보단, 경쟁사 기자를 이기는 것이 목표다. 아프리카에서 아사 직전의 아이를 촬영해 명성을 얻었으나 이후의 비난을 이기지 못해 자살한 기자가 한 사례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전통적 기자의 숙명이기도 하다. 그 직업을 택한 이상 감수해야 할 일이다. 자신 대신 총을 맞은 선배 기자의 시신을 뒤로하고 대통령이 사살되는 장면을 찍기 위해 달려간 신참의 선택은 최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