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리'
'미스터 메르세데스'는 '스티븐 킹의 첫 번째 하드 보일드 탐정소설'이라고 불린다. 킹은 기본적으로 공포소설 작가지만, 초자연적 상황이 개입되지 않은 훈훈한 이야기도 쓴 적이 있기 때문에, 그가 본격적인 탐정소설을 쓴 적 없다는 건 좀 의외긴 하다. 이 소설에 나온 인물들이 마음에 들었는지, 킹은 이후에도 시리즈를 썼고, 주인공 빌 호지스가 죽은 뒤에도 사이드킥이었던 중년 여성 홀리 기브니를 앞세운 또 다른 시리즈를 이어가고 있다. '홀리'가 그중 하나다.
팬데믹 시기 미국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다. 팬데믹의 공포는 차치하고라도, 유독 팬데믹에 대한 비과학적 움직임(안티백서, 트럼프의 이상한 방역 정책 등)이 강한 세력을 형성했던 미국 사회 분위기도 주요하게 언급된다. 물론 킹이 미국 사회의 비과학적 믿음이나 사회적 양극화를 폭로하는 학자는 아니다. '홀리'는 동료의 도움을 쉽게 받기 어려웠던 팬데믹 시기 탐정 사무소로 들어온 실종 신고를 힘겹게 감당해 나가는 홀리 이야기다.
초반부터 살인마의 정체가 드러나기에 스포일러랄 것도 없다. 인육을 먹어야 노화를 막을 수 있다고 믿는 80대의 금슬 좋은 노부부가 악당이다. 인근 대학의 생물학, 문학 명예교수 커플인 이들은 몇 년 간격으로 사람을 하나씩 납치해 알뜰하게 사용한다. 홀리가 사건을 의뢰받은 것은 첫 사건이 발생한 지 9년 뒤의 일이다. 살인마 노부부의 첫 사건부터 순차적으로 흐르는 시간, 홀리가 실종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시간이 교대로 흘러간다. 최종적으로 두 시간대는 겹친다. 독자는 아는 것을 홀리는 모른다. 그런데도 상당한 서스펜스를 연출하는 것은 물론 킹의 필력 덕이다.
이 노부부는 그동안 대중문화 콘텐츠에 등장했던 수많은 살인마 중에서도 최약체겠다. 아주 특별한 음식과 의약품으로 회춘하고 있다고 여기지만(사실은 플라시보 효과겠지), 아내는 심각한 좌골신경통, 남편은 알츠하이머 초기 증세를 감추지 못한다. 살인은커녕 제 몸 건사하기도 어려운 악당들이다. 이런 사람을 무시무시하게 보이게 하는 건 역시 그들의 행적이다. 그동안 자신의 작품에서 수많은 사람의 죽음을 묘사했던(어딘가 킹 소설에서 죽은 사람의 숫자, 원인 등을 정리해 둔 문서가 있지 않을까) 킹은 이번에도 재능을 아끼지 않는다. 해부학에 대해 꽤 진지하게 공부했음이 틀림없는 살인 묘사가 이어진다. '결함 있는 탐정'(defective detective) 홀리와 그를 돕는 또 다른 사이드킥 이야기는 은근히 훈훈하다. 그러고 보니 '홀리'는 킹의 작품 중에서도 선악 구분이 매우 뚜렷한 편이라 할 수 있겠다. 홀리를 돕는 청년 제롬과 바버라 남매의 성장기는 사실 전체 서사에는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데, 킹은 이들의 서사를 꽤 성의 있게 넣었다. 홀리 시리즈 이후 또 다른 스핀오프를 준비 중인 것일 수도 있고, 그저 평범한 흑인 청년이 숨어있던 재능을 발휘해 세상에서 꽃을 피우는 훈훈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일 수도 있겠다.
노벨문학상에는 공식적인 후보 같은 것이 없다. 미디어에 오르내리는 '후보'라는 것은 대부분 도박 사이트에서 베팅이 걸린 문인의 명단이다. 수 년 간 킹의 이름도 거기 있었다. 물론 킹이 정말 노벨문학상을 받는다면 밥 딜런 수상 이상의 센세이션이고, 노벨문학상을 주는 스웨덴아카데미는 논란을 피할 수 없겠지만, 킹의 느슨하고 오랜 팬으로서 난 그런 이변을 비판할 생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