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자를 위한 수준급 SF

세라 핀스커 '언젠가 모든 것은 바다로 떨어진다'

by myungworry

한국에 처음 번역돼 소개되는 세라 핀스커의 책인 '언젠가 모든 것은 바다로 떨어진다'는 초심자도 읽기 좋은 SF다. 13편의 단편이 수록됐으며, 다수의 작품이 넷플릭스 '블랙 미러'의 괜찮은 에피소드로 각색될법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 이 작품들이 영상화의 밑천이 될 정도의 아이디어만 가졌다는 뜻은 아니다. 난 '블랙 미러'를 좋아한다. 과학기술이 지금보다 조금 더 발전한 시대의 여러 가지 가능성을 적절한 서사에 담아 때로 암울하게 때로 흥미롭게 살펴보는 데 있어 '블랙 미러'는 수준급의 기술을 보인다. '언젠가 모든 것은 바다로 떨어진다'의 이야기들 역시 서사와 아이디어가 적절하게 맞물려 있다는 뜻이다.

'기억살이 날'은 전쟁 트라우마를 삭제한 채 살아갈 수 있는 기술이 발달한 시대의 이야기다. 참전 군인들은 1년에 하루인 '기억살이 날'에만 과거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다. 끔찍한 기억을 잊고 살아간다는 점에서 편리하지만, 이것이 좋은 일인지는 작품 중에서도 논쟁이다. 표제작인 '언젠가 모든 것은 바다로 떨어진다'는 기후위기, 계급의 양극화 등 익숙한 테마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한국의 SF작가가 썼다 해도 속을 수 있는 작품 같다. '죽은 사람들과 이야기하기'는 윤리적 고민을 생략한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에 대한 이야기다. 이렇게 요약하니 단순하고 흔한 것 같지만, 작품을 읽는 재미는 상당하다. 그래서 이런 요약이 작가에게는 미안하다. '뒤에 놓인 심연을 알면서도 기쁘게'는 의도치 않게 악용된 기술의 발전에 기여한 남자의 이야기다. 평생을 혼자 속죄하듯 세상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살아간 남자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그리고 (N-1)명이 있었다'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제목을 패러디했다. 수록작 중 가장 최신의 과학기술적 사유라 할만한 평행 우주에 대한 이야기다. 수많은 평행 우주에 사는 '세라 핀스커'들이 한 자리에 모여 컨벤션을 연다는 이야기다. 유머러스하면서도 우리 삶의 수많은 갈림길과 선택에 대한 생각에 잠기게 한다. 작가가 '아내'에게 감사한다고 썼다는 점을 봤을 때 세라 핀스커는 성소수자로 보인다. 작품에서 정체성을 드러내고 인정받으려 한다는 흔적은 없다. 작중 인물이 성소수자로 설정됐을 때조차 매우 자연스럽게 서사에 스며 있다. 그 어느 설정, 전개에서도 억지스러움을 찾기 어려운 수작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천재도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