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언 쿠글러 '씨너스: 죄인들'
분명 장르는 '공포', 세부 장르는 '뱀파이어물'이라고 듣고 갔는데 상영 1시간이 다 돼 가도록 뱀파이어는커녕 공포 비슷한 분위기조차 조성되지 않는다. 배경은 1930년대 미국 미시시피. 알 카포네 밑에서 일하던 시카고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온 쌍둥이 형제 스모크와 스택(마이클 B 조던)은 시골 창고를 사 흑인을 위한 음악 주점을 열려고 한다. 주로 연주될 음악은 블루스. 주점을 위해 기타리스트, 피아니스트를 영입하고 시비 거는 백인으로부터 업장을 지킬 가드를 데려오고, 음식 만들 사람을 부르고, 간판을 만들게 하고, 간간히 옛 인연과 해후하기도 하는 과정이 1시간 동안 펼쳐진다. 잘못 알고 극장에 들어왔나. 이 영화는 음악영화였나.
음악영화 맞긴 하다. 뱀파이어도 음악을 한다. 그것도 썩 잘한다. 처음 등장하는 뱀파이어 레믹은 백인. 그렇다고 선량한 흑인 뮤지션과 악랄한 백인 뱀파이어의 대결로 단순화할 수는 없다. 레믹은 아일랜드 출신으로 묘사된다. 아일랜드인은 '유럽의 검둥이' 아니었나. 게다가 주점 문 바로 앞에서 주점 안의 흑인 형제들을 유혹하는 레믹의 논리는 꽤 설득력 있다. 레믹은 스모크와 스택 형제에게 함께 KKK단을 죽이러 가자고 유혹한다. 레믹의 이에 잠시 물리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고, 그 모든 뱀파이어끼리 진정한 '형제'가 될 수도 있다. 이들은 서로의 감정과 생각에 감응하는 능력이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말로만 '형제'지 사실 치고받고 싸우기 일쑤인 '흑인 형제들'보다 훨씬 진짜 형제 같다.
목사인 아버지에게 '죄인들'이나 하는 음악을 멀리하라고 설득받지만 음악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못하는 젊은 새미는 관찰자다. 새미의 음악은 과거와 현재를 잇고, 심지어 악령을 홀리는 재주까지 있다. 새미가 주점에서 첫 곡을 연주할 때 과거의 아프리카 주술사, 미래의 힙합 뮤지션, 중국의 경극 배우가 위화감 없이 뒤섞이는 장면은 라이언 쿠글러가 이 영화를 구상할 때부터 핵심 장면이라고 못박았을 것 같다. 통상 쿠키 영상은 군더더기처럼 여겨질 때가 있지만, 이 영화의 첫 번째 쿠키는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생각해 보면 정말 많은 사람이 죽는데, 죽음 장면이 의외로 상세히 묘사되진 않는다. 좁은 장소에서 하룻밤 사이 펼쳐지는 뱀파이어의 살육극을 그린다는 점에서 '황혼에서 새벽까지'를 언급하는 사람도 있지만, '씨너스'와 '황혼에서 새벽까지'의 목적은 분명히 다르다. '황혼에서 새벽까지'가 장르물의 재미를 끝까지 밀어붙이려 했다면, '씨너스'는 장르에 한 발만 담근 채 창작자의 또 다른 예술적, 문화적 야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영화다.
이 영화가 내년 아카데미에서 언급될지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음악 분야에선 반드시 후보에 들어야 할 것 같다. '블랙 팬서'와 '오펜하이머'로 이미 두 차례나 음악상을 받은 루드비히 고란손이 다시 한번 수상하러 나설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