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에코-로맨스 스릴러

윤고은 '밤의 여행자들'

by myungwo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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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영국 추리작가협회가 주관하는 '대거상'을 받았다기에 의심 없이 추리 소설인지 알았다. 가디언은 이 작품을 '에코 스릴러'라고 평했다고 한다. 읽고 나니 내가 생각했던 '추리 소설' '스릴러'의 틀에는 맞지 않는 소설이었다. 하긴, SF에도 대체역사, 스팀펑크, 밀리터리, 스페이스 오페라 등 수많은 하위 장르가 있는데, 추리 소설이라고 경찰, 살인자, 탐정, 밀실만 나오란 법은 없다. 오히려 재밌는 건 해외 출판계의 인식이었다. 이 작품을 펴낸 민음사를 비롯해 한국 출판계 어느 쪽에서도 이 작품을 '추리 소설'이나 '스릴러'로 분류하진 않았을 것이다. 해외 출판계에서는 장르 문학의 폭이 한국보다 훨씬 넓다고 봐야 하나.


200쪽 남짓한 분량으로 빠르게 잘 읽힌다. 한국의 노동환경에 대해 자주 언급되는 묘사가 이어지는 초반부를 넘어가 가상의 여행지 무이에 다다르면 더욱 그렇다. 아마 작가가 '밤의 여행자들'을 쓰면서 간직한 핵심 아이디어는 '재난 여행'일 것이다. 쓰나미든 지진이든 대학살이든, 재난을 여행 상품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여행사 '정글'의 직원 요나가 주인공이다. 직장에서 조금 위태로운 처지에 놓인 요나는 거대 씽크홀이 생긴 무이 여행 상품에 대한 평가를 위해 파견된다. 이 코스가 지속가능한지 판단하기 위해서다. 현실에서도 '다크 투어리즘'이 있지만, 이 소설의 '재난 여행'은 성격이 조금은 다르다. "재난 여행을 떠남으로써 사람들이 느끼는 반응은 크게 '충격->동정과 연민 혹은 불편함->내 삶에 대한 감사->책임감과 교훈 혹은 이 상황에서도 나는 살아남았다는 우월감'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 재난 가까이 갔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안전했다, 는 이기적인 위안 말이다."


요나는 무이의 임팩트 없는 여행 코스에 낙제점을 매기려 하지만, 요나의 여정은 무이를 떠나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작은 해프닝이 발생하면서 뒤틀리고 만다. 요나는 예기치 않게 무이에 더 머물게 되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모종의 '음모'에 연루된다. 이렇게 줄거리를 쓰다 보니 정말 추리 혹은 스릴러 같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꽤 많은 등장인물이 죽어나가기도 한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로맨스는 서사의 전개상 튀진 않지만, 요나의 운명을 결정짓기 위해 로맨스 대신 다른 요소를 넣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텔레비전 시리즈 제작이 확정됐다고 한다. 재난까지 상품화하는 지독한 자본주의의 회사, 미스터리한 무이와 그곳 사람들, 이국 청년과의 로맨스, 종반부의 재난 스펙터클이 엮이는 영상물이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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