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자기 시대에 유용한 신을 창조해왔다

카렌 암스트롱 '신의 역사'

by myungworry
9791193154069.jpg

리처드 도킨스 같은 전투적 무신론자의 논리에 조곤조곤 반박하는 카렌 암스트롱의 전작을 생각했지만, '신의 역사'는 그런 책이 아니다. 오히려 매우 본격적인 종교, 역사 서적에 가깝다. 말 그대로 고대의 창조신화부터 현대의 무신론까지 인류가 창조하고 받아들이고 거부한 '신 개념'의 역사를 다룬다. 700쪽 이상의 하드커버 책이다. 핵심은 책날개에 쓰인 "인간은 언제나 자기 시대에 유용한 신을 창조해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저 멀리서 인간의 삶을 관장하면서 인간을 위협하고 벌주고 칭찬하는 '인격신'의 개념은 기나긴 신의 역사에서 매우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암스트롱은 그런 신 개념은 오래전 기각된 원시적 개념이라고 보지만, 그 개념이 여전히 한국 교회에선 주류긴 하다. 암스트롱이 은근하게 기울어지는 쪽은 신비주의적 접근법이다. "신비주의자들은 신을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있는 객관적 '사실'로 보는 대신 존재의 바탕에서 신비롭게 경험되는 주관적 체험이라고 주장해 왔다. 이 신은 상상을 통해 다가가야 하며, 표현할 수 없는 신비, 아름다움, 삶의 가치를 표현한 다른 위대한 예술적 상징처럼 일종의 예술 형식으로 볼 수 있다." 꼼꼼하게 읽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도 있었지만, 아무튼 내가 대략이나마 이 책을 통독했다는데 혼자 자부심을 느낀다. 다음은 일부 발췌.

이러한 실용주의는 신의 역사에서 항상 중요한 요소가 된다. 사람들은 특정한 신 개념을 과학적으로나 철학적으로 타당하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유용하기 때문에 받아들인다.
모세는 홀로 산꼭대기로 올라가 율법이 적힌 돌판을 받았다. 이교도의 환상에서처럼 사물의 본성 자체에서 질서, 조화, 정의의 원칙을 경험하는 대신 이제 하늘로부터 율법이 내려온 것이다.
예언자들은 동정심이라는 가장 중요한 의무를 스스로 발견했는데, 이것은 축의 시대에 형성된 모든 주요 종교의 특징이 된다. 이 시기에 '문명 세계'에서 발전하고 있던 새로운 이데올로기들은 모두 종교적 경험이 일상생활과 성공적으로 통합될 때 진정한 종교라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 깨달음을 얻은 이는 시장으로 돌아와 모든 살아 있는 생명에 대한 동정심을 실천해야 한다.
예언자들은 자신의 인간적 감정과 경험을 야훼에게 돌림으로서 중요한 의미에서 그들 자신의 모습대로 신을 창조했다. (...) 모든 종교는 어느 정도는 신인동형에서 시작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부동의 동자'처럼 인간으로부터 완전히 멀리 떨어진 신은 영적인 탐구를 고취할 수 없다.
이교 신앙은 본질적으로 관용적이었다. 오래된 숭배가 새로운 신의 출현으로 위협받지 않는다면 전통적인 신들 속에 다른 신이 포함되는 일은 언제든지 가능했다.
유대인은 신을 저 위에서 인간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빅브라더'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 대신 인간 개개인 안에 신에 대한 감각을 키워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맺는 관계가 성스러운 만남이 되도록 했다.
쿠란에서 알라는 야훼보다 더 비인격적이다. 그에겐 성서의 신에게서 보이는 파토스와 열정이 결여되어 있다. 우리는 자연의 '징표' 속에서만 신의 무언가를 엿볼 수 있으며, 신은 너무 초월적이어서 '비유'로만 말할 수 있다.
인격신은 중요한 종교적 통찰을 반영한다. 어떤 최고의 가치도 인간보다 중요할 수 없다는 것이다. (...) 그러나 인격신은 심각한 골칫거리가 될 수도 있다. 인격신이 그저 우리 자신을 형상화한 우상, 곧 인간의 한정된 욕구와 두려움과 욕망의 투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다양한 신의 현현을 통해 개별적으로 인간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신성한 말씀(로고스)은 신이 자신을 부르는 이름 역할을 한다. 이것은 신의 절대적 실체가 무궁무진하고 신성한 체험이 사람마다 제각기 다르므로, 어떤 특정한 인간 언어로 요약해 신을 표현할 수 없다는 뜻이다. (...) 그런 의미에서 이븐 알-아라비는 (...) "신의 축복을 명상하라. 그러나 신의 본질(알-다트)은 명상하지 말라"는 하디스를 즐겨 인용했다.
파스칼은 신을 믿는 것이 오직 개인의 선택에 달린 문제임을 처음으로 인정한 사람이었다. 이 점에서 그는 최초의 근대인이었다.
역사적으로 사람들은 기존 신 개념이 더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 때 그 개념을 폐기하곤 했다. 때때로 이런 움직임은 폭력적인 우상 파괴로 나타났다.
프로이트는 현명하게도 어떤 식으로든 종교를 강제적으로 억압하는 것은 파괴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섹슈얼리티와 마찬가지로 종교도 삶의 모든 측면에서 영향을 끼치는 인간의 욕구에 해당한다.
서구에서 기독교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 그리스도에 근거해 고통과 수난의 의미를 밝혀주는 종교였으나, 이슬람은 성공 지향적 종교였다. 쿠란은 정의, 평등, 부의 공정한 분배 같은 신의 뜻에 따라 사는 자들은 실패할 수 없다고 가르쳤고, 이슬람의 역사는 이 가르침을 실제로 입증할 것 같았다. 예수와 달리 무함마드는 패배자가 아니라 눈부신 성공을 거둔 사람이었다.
근본주의는 신으로부터 후퇴다. 그것은 인간의 역사적 현상들을 종교적 헌신의 중심부에 올려놓은 새로운 형태의 우상 숭배다.
각 종교의 경전에서 말하는 신의 우주 창조설은 세계의 기원에 대한 학문적 설명이 아니라 원래 정신적으로 심리적인 진리의 상징적 표현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자본주의-에코-로맨스 스릴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