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건 '슈퍼맨'
**스포일러 있음
브라이언 싱어의 '슈퍼맨 리턴즈'에서 슈퍼맨은 사실상 신의 아들처럼 묘사됐다. 기독교 문화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싱어의 슈퍼맨이 예수 그리스도의 패러디라는 점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이어진 잭 스나이더의 슈퍼맨들은 싱어처럼 신격화되진 않았지만, 여전히 진지했다.
제임스 건은 작심한 듯 21세기에 제작된 기존 슈퍼맨 이미지를 벗어난다. 건의 슈퍼맨은 근래 어떤 슈퍼맨보다 더 감정적이고 취약하다. 싱어나 스나이더의 슈퍼맨은 막강한 적을 어떻게 이겨야 할지 고민했지 자기 자신에 대해선 고민하지 않았다. 건의 슈퍼맨은 삶의 목적을 돌아보고 회의한다. 물론 이번 '슈퍼맨'이 자아성찰에 대한 영화라는 뜻은 아니다. 싱어와 스나이더의 슈퍼맨이 이미 성인이 돼 세상 물정에 흔들리지 않는(불혹) 인간이었다면, 건의 슈퍼맨은 왠지 10대 후반 혹은 20대 초반의 보통 사람 같다는 뜻이다.
크립톤 행성의 친부모는 생존을 위해 지구로 입양 보낸 아들 칼엘, 즉 클라크 켄트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칼엘은 메시지 전반부의 내용에 따라 지구인을 보호하고 악한 자는 징벌하며 선한 자는 돕는 삶을 살아왔지만, 사실 비행 중 소실됐다가 뒤늦게 복원된 메시지 후반부에는 전혀 다른 메시지가 들어있었다. 칼엘은 지금까지처럼 메시지 전반부에 어울리는 선량한 삶을 살고 싶지만, 이를 위해서는 친부모의 조언을 거슬러야 한다.
슈퍼맨뿐 아니라 이 영화의 모든 캐릭터들이 어딘가 미성숙하다. 행동 동기는 단순하다. 슈퍼맨에겐 크립토라는 반려견이 따라붙는다. 슈퍼맨은 크립토가 납치되자 거의 발광하기에 이른다. 슈퍼맨의 숙적 렉스 루터도 능력은 막강하지만, 흉악하고 무시무시하기보다는 어딘지 철없는 10대 소년 같다. 자신의 사설 감옥에 가둬놓은 사람들에는 전 여친도 있다는 설정이나, 슈퍼맨을 적대하는 이유를 고백하는 대목 같은 것 때문이다. 렉스의 현 여친을 셀카 중독 인플루언서처럼 설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영화의 주요 캐릭터 중 유일하게 어른스러워 보이는 것은 클라크의 여친 로이스 레인뿐이다.
그런데 내게 로이스 레인이 슈퍼맨, 렉스, 심지어 크립토보다 덜 매력적으로 보인 이유는 무엇일까. 단지 로이스에게 초능력이 없기 때문일까. 혹시 덜 성숙한, 많이 흔들리는, 때로 실수하는, 그래서 인간적으로 보이는 캐릭터들이 어울리는 영화 속 세계관에 로이스가 녹아들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은 아닐까. 이 영화에 대해 갑론을박이 있는 모양이지만, 조금 허술한 슈퍼맨을 보는 것도 내겐 재미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