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과학의 성공과 실패
2012년도에 읽은 ‘경제고전’(다케나카 헤이조) 이후로 경제 관련 도서를 읽어 보지 않다가 최근 발간된 본 도서를 선택하게 읽게 되었다. 사실 경제학원론의 이론 이야기라면 최신 도서를 볼 필요가 없겠지만, 최근 경제학 흐름을 알고 싶어서 이코노미스트 '2015년 올해의 책', 파이낸셜 타임스 '2015년 최고의 경제서', 블룸버그 '2015년 베스트북'으로 선정된 본 도서를 필연적으로 읽게 되었다.
책 제목을 들여다보면 ‘Economics Rules: The Rights and Wrongs of the Dismal Science)’ 으로 한글 번역 제목인 ‘그래도 경제학이다’ 보다 더 와 닿는다. 저자 ‘대니 로드릭’은 하버드 대학을 최우등(summa cum laude)으로 졸업하고 프린스턴 대학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의 국제정치경제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게다가 미국 사회과학연구회(Social Science Research Council)가 제정한 앨버트 허시먼(Albert Hirschman) 상의 첫 번째 수상자다.
저자는, 19세기 영국 역사학자 토머스 칼라일이 ‘우울한 과학(dismal science)’이라고 부른 경제학의 옳고 그른 점을 본 도서를 통하여 독자를 설득한다. 우선 일반 독자들이 읽기에 내용이 어렵다. 나 또한 경제학 전공자는 아니지만 경영학과 출신으로 미시, 거시, 국제경제학을 공부하였었다. 그러나 전체적인 이론 부분이 어려워서 책을 읽으면서 구글링을 열심히 하고 공부도 따로 하였다. 리카도의 비교 무역, 헥셔-올린 정리 등을 검색하여 내용을 곱씹어 보았다.
저자가 말하고 싶은 핵심 내용은 ‘5장. 경제학이 틀릴 때’에 명백히 드러나며, 그는 최고의 지성과 우쭐함을 겸비한 경제학자들이 처참하게 실패하는 사례로 2가지를 설명한다.
첫째, 워싱턴 컨센서스를 언급한다.
미국의 경제학자들과 라틴아메리카의 고위 경제관료들이 워싱턴(국제경제연구소)에 모여, 정부 개입을 반대하면서 ‘안정화·민영화·자유화’의 구호를 채택했다. 워싱턴 컨센서스의 핵심은 경제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한 것이다. 하지만 민영화는 경쟁과 효율을 낳기보다는 정부와 결탁한 자들의 독점을 만들었을 뿐이다. 이들의 논리를 끝까지 밀어붙인 ‘금융 세계화’는 결국 1990년대 후반 전 세계를 휩쓴 금융위기로 이어졌다(우리나라의 IMF사태가 그 결과이다)
즉, 각 국가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인 제도 도입을 밀어붙인 워싱턴 컨센서스는 27년이 지난 지금 완전히 '파산선고'를 받았다.
둘째,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인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경제학자들은 위기를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악성 부실 자산과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가치가 떨어지고 있는 금융 상품에 과도하게 차입하여 발생한 리먼브라더스 사태를 ‘효율적 시장가설’에 푹 빠져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것이다.
위의 실패사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제학의 특수성을 감안해야 한다. 경제학을 과학으로 만드는 것은 모델이다. 모델이 세계가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개선될 수 있는지에 관한 우리의 이해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사용될 때, 경제학은 쓸모 있는 과학이 된다. 또한,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근본적으로 ‘여러 모델의 모음’ 이기 때문에(‘모델’이란 경제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사용하는 추상적인 분석틀) 하나의 경제 현상을 두고 하나의 모델로 설명하기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상황에 맞는 최적의 모델을 선택하는 것이 핵심이다. 즉 맥락(context)에 맞는 적절한 모델을 선택하는 기예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저자는 “경제학이 맥락과 관계없이 적용되는 보편적인 설명이나 처방을 제시할 수 없다”라고 주장한다. 사회 현상은 너무도 가변적이고 다양하기 때문에 유일한 분석틀에 구겨 넣어질 수 없어서다. 저자는 “각각의 경제학 모델은 전체적인 지형의 조각을 보여주는 부분적인 지도”라며 “이들이 모두 합쳐지면 사회적 경험을 구성하는 무수히 많은 언덕과 계곡에 대한 최고의 안내서가 된다”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그는 ‘모델 선택에 주의가 부족하고, 때때로 다른 모델을 무시하고 특정한 모델을 과도하게 강조한다’는 점을 들어 경제학자들을 비판하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본 도서에서 저자는 경제학자를 비판하기도 하고 옹호하기도 한다. 앞서 말했듯이 적절한 모델을 찾아 경제현상을 즉각 해석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리하여 현재 행동경제학이 유행인 것이다.(앞으로 더 발전할 것이다.)
우울한 과학을 연구하고 발전시키는 경제학자들도 경제예측에 어려움이 있는데, 그보다 무지한 정책론자들이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결정 시기를 저울질하고 몰아붙이는 것을 보면 안타까울 따름이다. 우리도 경제현상의 맥락을 짚어볼 수 있는 혜안을 키워야겠으며,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한국은행 이주열 행장이 정치인에게 휘둘리지 않고 소신껏 정책을 펼치도록 응원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