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
지난번 스릴러물의 책을 찾다가 본 도서의 저자인 ‘히가시노 게이고’가 쓴 ‘가면산장 살인사건’을 읽게 되었다. 그 책 표지에 소개되었던 문구(감쪽같이 당했습니다. 완전히 속았어요, 엄청난 반전)는적어도 나에게는 다가오지 않았으며, 책 중간에 범인을 이미 눈치채서 김이 좀 샜었다.
우리나라에서 워낙 인기가 많은 작가이기에 그의 다른 작품을 꼭 찾아서 다시 도전해 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본 도서가 신간으로 발간되었다. 그의 히트작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라플라스의 마녀’는 결국 또 연기되어, 나중에 읽어 볼 생각이다.
자, 각설하고 본 도서의 줄거리를 살펴보자. (예스 24 인용)
일본 자위대에 납품할 최신예 거대 전투 헬기 ‘빅 B’가 최종 시험 비행을 앞두고 피랍된다. ‘빅 B’는 대량의 폭발물을 실은 채 ‘천공의 벌’을 자처하는 범인의 무선 원격 조종에 의해 후쿠이 현 쓰루가 시의 고속 증식 원형로 ‘신양’ 상공으로 이동한다.
원전 바로 위 800미터 상공을 선회하는 헬기.
범인은 정부에 메시지를 보내 “일본 전역의 원전을 모두 폐기하지 않으면 헬기를 원전에 추락시키겠다”라고 협박한다. 그리고 자신의 요구 사항과 현장 상황을 TV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할 것을 요구한다.
남은 시간은 8시간.
일본 열도는 순식간에 일촉즉발의 공포에 휩싸인다. 정부와 지방 자치 단체, 자위대, 경찰, 소방 당국, 원전 관계자들이 우왕좌왕하며 범인의 요구에 대책 없이 끌려 다닌다.
헬기의 연료는 시시각각으로 소진돼 가고, 원전 주변 주민들의 엑소더스가 벌어지는 가운데 범인도 정부도 예상하지 못한 뜻밖의 사실이 알려지는데, 그것은 바로 ‘빅 B’ 안에 이 헬기 개발에 참여한 연구원의 어린 아들이 홀로 타고 있다는 것.
이 소설은 원자력발전소 파괴를 요구하는 헬기 납치범과 일본 당국 간에 벌어지는 아슬아슬한 심리전을 그렸다. 테러리스트의 헬기 탈취부터 사건 종료까지 10시간에 걸친 드라마를 676쪽의 방대한 분량으로 펼쳤다. 테러를 일으킨 범인은 ‘가면산장 살인사건’처럼 소설 끝에 등장하여 반전을 일으키지는 않으며 대놓고 중간에 범인임을 알려준다. 이 소설은 범인이 누구인지를 궁금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 차츰 범인이 누구인지 알려주고, 범인의 동기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게 이 소설의 재미이다.
특히 이 소설에서 범인의 팩스 전송문과 말을 통하여 작가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꽤 의미가 있다.
<아래 참조>
<P.423>
"원전이 대형 사고를 일으키면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도 피해를 입게 돼. 말하자면 나라 전체가 원전이라는 비행기에 타고 있는 셈이지. 아무도 탑승권을 산 기억이 없는데 말이야. 하지만 사실은 그 비행기를 날지 않도록 하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야. 그럴 의지만 있다면. 그런데 그런 의지가 보이지 않아. 승객들의 생각도 모르겠고. 일부 반대파를 제외하곤 대부분 말없이 좌석에 앉아 있을 뿐 엉덩이조차 들려고 하지 않아. 그러니 비행기는 계속 날 수밖에 없잖아. 그리고 비행기가 나는 이상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비행기가 잘 날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밖에 없어."
<P.632>
집단 괴롭힘이 있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도모히로와 같은 반이었던 아이들을 만났을 때 보았던 그 가면 같던 얼굴들. 아이들만 그런 얼굴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그는 깨달았다. 다수의 사람들이 어른이 돼서도 가면을 벗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침묵하는 군중'을 형성한다.
<P.673~674>
"침묵하는 군중이 원자로라는 존재를 잊게 해서는 안 된다. 그 존재를 모르는 척하게 해서도 안 된다. 자신들 바로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 의미를 생각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자신의 길을 선택할 기회를 줘야 한다. (중략) 원자로는 다양한 얼굴을 지녔다. 인류에게 미소를 보내는가 하면 송곳니를 드러낼 수도 있다. 미소만을 요구하는 것은 인간의 오만이다."
작가가 말하는 ‘침묵하는 군중’에서 난 NIMBY 현상을 떠 올렸다. 우리에게는 꼭 필요한 시설들(예, 전투비행장, 화장장, 쓰레기 소각장, 원전 등)이지만, 그것이 우리 집 바로 옆에 생긴다면, 집 값 떨어진다고 불사 항쟁(?)의 자세로 반대하는 군중의 모습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
게다가, 최근에는 경주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월성원전의 가동을 중단하기도 하였다. 만약 중단하지 않아서 최악의 경우 방사능이 유출되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할 뿐이다.
세월호 사건 이후 최순실 게이트로 지금 온 국민이 허망해하고 있고 대통령 하야를 위한 집회는 계속 진행 중이다. 사건, 사고 후 돌이켜보려고 해도 이미 엎질러진 물인 것이다.(대통령을 누가 뽑았나?)
범인 미시마의 말을 빌리자면, ‘어린아이는 벌에 쏘이고 나서야 벌의 무서움을 안다.’
우리도 이제는 피폐해진 본인의 삶이 아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라는 플라톤의 명언이 최순실 게이트로 유행어처럼 번지고 있다. 꼭 정치만이 아니라도 우리의 삶이 지배당하지 않도록 어느 하나 허투루 보지 않고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