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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랩 Oct 12. 2022

고생한 나를 대접해주는 방법

나만의 보조배터리 늘리기




동남아 비행은 쉽지 않다. ‘여행’을 목적으로 하는 손님들이 80% 이상이고, 특히나 어린이 손님이 많아서이다.

어른들도 여행길의 흥분과 설렘을 감추기 쉽지 않은데, 넘치는 에너지를 감출 생각 없는 어린이들이 가득한 비행기는 늘 압도될 정도로 에너지가 엄청나다.


 대가족 단위로 할머니, 할아버지, 4인 가족 두 쌍 이렇게 타는 경우도 많은데 비행기 좌석에 따라 부득이하게 이산가족이 되어, 서로가 뭘 잘 챙겨 먹는지 심심하지는 않은지 살피고 서로 묻고 답하기 바빠 다른 비행에 비해 꽤 어수선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비행기가 익숙지 않은 가족도 있고, 친구들이 맥주 한 캔 제대로 못 먹을까 서로 하나라도 더 시켜서 나누기 바쁜 좌석도 있기 때문에 평소에 비해 주 문량도 많다.


( “어? 그건 뭐야?” “야, 너 이거 안 시켰어? 다 공짜야 . 무조건 먹어야지~”

오지랖도 넓고 좋은 건 나눠야 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 문화’가 가장 잘 나타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런 들뜬 공기 속에서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주문을 처리하고  말 그대로 녹초가 되어 동남아에 도착하게 된다.

 비교적 쾌적한 기내에서 벗어나 축축하고 더운 공기로 나가면 피로가 두 배가 되는 느낌이 든다.


 출발 전에는 오랜만에 가는 동남아 비행이라 ( 올해 5월까지 코로나로 인해 승무원의 동남아 체류가 중단되어 한국발, 한국행 두 팀이 비행기에서 교대로 근무를 했다) 네일과 패디큐어, 마사지, 쌀국수, 전통시장 방문을 당연한 코스로 계획했었는데 호텔에 도착하고 나니 아무것도 할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한국보다 저렴한 네일아트!

두 시간을 충분히 받고도 3만 원 정도에서 끝나는 시원-한 마사지.

베트남 유명 기념품이기도 한 맛있는 다람쥐 콩 커피와 라탄 가방 등을 살 수 있는 전통 시장.

몇 년 전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베트남 가서 꼭 먹어야 하는 필수 코스가 된 ‘포피스 피자’와 ‘콩카페’.

비행보다 더 바쁘게 돌아다니면서 섭렵해야 하는 코스였는데,


코로나 이후 오랜만에 만석으로 해 낸 비행에 완전 넉다운이 되어버렸다.

코로나 이후로 다짐한 것이 ‘다음에 와서 하면 되지 뭐’ 라는 생각은 접어두자는 거였는데, 도저히 다음을 기약하지 않고서는 안될 컨디션이었다.


그럼에도 절대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마사지’다.

한국에서는 저렴한 곳을 찾아도 30분 발마사지가 3만원이 넘어갈 때가 많아서 엄두를 내지 못하는데, 동남아에서는 긴 시간 충분히 전신 마사지를 받고도 3만 원 정도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도착한 호텔에서 승무원들을 위해 50% 할인 프로모션을 제공한다는 정보를 받았다.

아무리 동남아라고 해도 호텔 마사지와 스파는 조금 부담되는 가격인데, 50% 할인이라는 말에 혹한 데다 밖으로 혼자 나가기도 너무 힘들어서 고민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내가 가진 가장 쓸만한 능력, ‘자기 합리화’가 시작되었다.


‘그래 이렇게 힘들게 일하면서 온 데다가 그동안 코로나라고 3년 동안 마사지 한 번 제대로 받아본 적도 없잖아.’


‘근육통 때문에 시설도 별로인 데서 10만 원도 넘는 마사지를 받았었는데,  여기는 시설도 좋고 럭셔리하게 대접받으면서 받는데도 8만 원이 안돼….. 하자. ‘


‘이번에 명절 상여금도 받았잖아.’


‘ 한국 가서 겨우 하루 쉬고 또 어느 스케줄을 불릴 지도 모르는데, 몸 아껴야지’


나한테 쓰는 돈에 있어서는 유독 검열이 심해서 이게 왜 필요한지, 정말 가치 있는 소비인지 자꾸 주저하게 되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번엔 안 하면 손해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냥 몸이 그렇다고 강력하게 말했다. ‘받아, 제발….’이라고)


당장이라도 침대에 눕자마자 잠들어버릴 것 같은 몸을 끌고 호텔 스파샵으로 갔다.

웰컴 드링크를 건네받고 오늘 받을 마사지를 골랐다. 내가 고른 것은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베트남식 마사지 80분, 코코넛 과육 스크럽 그리고 환절기라 건조해지고 일어나는 내 피부를 위한 스크럽과 뭉친 근육을 위한 마사지!


한국에서는 스크럽을 받을 생각을 해보지도 못했지만, 이왕 맘 먹고 온 거 최고로 기분 좋게 돈을 쓰고 싶었다.


고급스러운 복도를 지나서 푹신한 소파에 앉아 따뜻한 물에 발을 담그고 마사지사가 발 스크럽을 해주셨고, 잠이 솔솔 올 것 같은 노래가 흐르는 곳에서 엎드려 누워 스크럽을 받았다.

스크럽이 끝난 후엔 내 몸이 다 들어가고도 한참이 남는 거대한 욕조에서 잠시 몸을 데우고 다시 마사지를 시작했다.

베트남식 마사지가 뭔지 잘 몰랐는데 한의원에서처럼 도자기로 부항을 뜨고 빨아들인 압을 그대로 가지고 도자기를 이동해 어깨부터 허리까지 쫘악 빨아들인다. 근육을 빨아들인 뒤 주욱-주욱- 밀어내는 느낌이랄까.


처음엔 머리가 쭈뼛 설 만큼 아팠지만 압을 주어 등 전체를 풀어주니까 너무너무 시원해서 손끝 발끝이 저릿저릿한 기분이었다.


바른 자세로 누워 마사지를 받을 때는 데워진 안대와 목 베개를 받쳐 주었는데 헝겊 안에 허브를 담아 데운 것이라고 했다.

은은한 허브 향이 나면서 따뜻한 안대를 눈에 올리고 목뒤에 목베개를 배고 있으니까 잠이 솔솔 왔다.

내 몸의 모든 근육을 잘게 쪼개버리겠다는 느낌으로 꼼꼼히 내 전신을 풀어주시는 손길에 너무 황홀했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우아하고 호사스러운 마사지였다.


그렇게 스크럽과 목욕 60분과 마사지 80분을 만족스럽게 받고 나와서 따뜻한 차를 마시며 호텔 밖 야경을 보는데 ‘성공한 삶’ ‘부내나는 삶’을 사는 기분이랄까.


이 정도 서비스를 받고 한국 돈 78,000원을 내다니!!


그 기분이 사실 제일 짜릿했던 것 같긴 하지만 내가 가장 만족스러웠던 부분은 ,  내가 나를 대접했다는 점이었다.


“오늘 고생했어. 그니까 이 정도 호사는 누려도 돼. “ 하고 기분 좋게, 죄책감 없이 즐긴 시간.

나를 위해 오롯이 즐긴 시간이 주는 만족감이 너무 컸다.


“오늘은 힘드니까 쉬자” 하고서 시원한 호텔 방에 누워서 넷플릭스를 보는 시간도 물론 나를 위한 시간이고 좋은 휴식이였겠지만, 이 마사지를 통해 내가 나를 잘 대접해줘야겠구나, 그렇게 해도 하나도 아깝지 않구나라는 걸 깨닫게 해준 좋은 계기가 되었다.


내가 나를 귀하게 여기고 그날 그날 나에게 필요한 휴식과 행복을 제공하는 것. 그것이 바쁘고 힘든 매일을 살아가는 나에게 꼭 필요한 대접이라는 생각을 하게됐다.


 


그리고 모자람이 하나도 없는 이 만족감이 앞으로  나를 더 열심히 일하게 하고 또 내가 나를 대접할 기회를 만들어 낼 것 같다.


앞으로는, 이렇게 ‘급속 충전’이 되는 ‘나만의 보조배터리’들을 하나씩 늘여가고, 경험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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