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날랩 Oct 05. 2022

조식을 먹는 건지 눈칫밥을 먹는 건지

승무원들의 회식




사람들이 여행에서 기대하는 것 중 꽤 높은 순위로 ‘조식’을 꼽는다는 것을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대충 세수를 하고 (혹은 풀메이크업과 인스타용 풀 착장) 나가 하얀 접시를 들고 기대감에 부풀어 다양한 음식을 구경하고, 예쁘게 골라 담아내서 오렌지 주스나 따뜻한 커피와 함께 사진을 찍고 난 후, 하나씩 음미하는 기분!! 생각만 해도 여행에 너무 어울리는 아침의 시작이다!


 나 역시 맛있는 식사를 담는 일, 샐러드와 빵과 계란 요리를 기분 좋게 먹고 그날 하루를 시작하는 일을 좋아한다.


 하지만, 이것이 일을 하러 와서 먹는 ‘조식 타임’ 일 때에는 행복도가 반감된다.


밥은 중요하다.

해외에 나와서 시차 맞추기도 힘들고 또 나갈 일이 따로 없다면 식사할 곳 역시 마땅치 않기 때문에 하루 한 끼 호텔에서 무료로 제공해주는 조식은 엄청나게 큰 혜택이다.

고로, 안 먹을 수 없다. 먹어야만 한다.


 한국 시차에 맞춰 현지 시간 새벽에 깨어나 챙겨 온 과자 따위로 주린 배를 대충 채운 상황이라면 특히나 “계란, 햄!” 이런 단백질이 매우 필요하다. 볶음밥이나 오믈렛을 주는 조식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럼 뭐가 문제냐고?!


그건 바로 ‘사람’이다.

함께 근무하면서 온 사람들.

나 혼자 내려가서 조용히 밥을 먹고 올라온다면 30분도 안 걸릴 식사가 동료를 마주치면 가늠할 수 없이 늘어진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눈치를 보고 조용히 내려와서 먹으려고 했는데 레스토랑을 가는 길에 함께 온 동료를 만나게 된다. 비슷한 연차의 편한 상대라면 합석을 하거나 아님 따로 먹기가 수월하다.


그런데, 그 상대가 그날의 ‘팀장님’이라면…?

그리고 그 ‘팀장님’ 께서 모두와 함께 대화하며 식사하길 바라신다면…?

여행의 즐거움인 조식은 이제 사회생활의 장이 된다.


서로 편하지 않고, 어색한 사람들끼리 공통점을 힘겹게 끄집어내서 대화를 이어가며 식사를 시작한다.


“오, 이거 맛있어요. 이따가 드셔 보세요.”

“어머, 누구 씨 그건 뭐야? 어디에 있었어?”


음식 이야기로 시작하여, 호구조사, 요새 재미있는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 회사 이야기 등등…

일을 할 때엔 하지 않았던 자잘한 tmi가 시작되고, 하나하나 리액션하며 밥을 먹느라 이게 입으로 가는지 코로 가는지 모른다.


대부분의 승무원들은 2~3 접시 정도를 먹으면서 ‘이게 오늘 나의 마지막 식사다’라는 전투 감에 불타 식사를 하기 마련인데 서너 명이 빙글빙글 도는 tmi 토크를 하다 보면 1시간이 훌쩍 지난다.




자, 문제는 지금부터다. 이러는 사이 또 본인의 생체리듬에 맞게 그즈음 내려오는 사람이 팀장님을 향해 인사를 하기 시작한다.

팀장님들 열에 여섯 정도는  “혼자 먹지 말고 이리로 와서 같이 먹어~”라고 배. 려. 를 해주신다.


그 상황에서 “아니요, 저는 혼자 먹어도 돼요.”라고 잘라 말하는 승무원은 거의 없다. (mz 여러분, 힘을 내주세요. 문화를 바꾸지 못한 못난 선배를 용서하시고.. 부디, 힘써주세요…)


새로운 사람이 추가되면 할 말이 없던 사람들은 정보공유를 시작한다.


“오늘 복숭아 맛있어요. 복숭아 가져와서 드세요. 저기 가면 오믈렛도 해줘요.”


그리고, 각자 커피를 리필해 마시면서 팀장님이 언제 일어나나 기다리며 모두가 그 자리를 지킨다. 그렇게 한 명, 두 명이 더 추가될 때까지 처음 온 사람들은 엉덩이에 쥐가 날 지경이어도 그 자리에서 묵묵히 수다를 이어간다.


물론, 그 시간을 즐기고 행복해하는 구성원들도 존재하겠지?

하지만, 길어지는 아침 식사 시간은 나에겐 늘 진 빠지는 일이다.

다 같이 친한 동료들이랑 함께라면 모를까, 낯도 가리고 말주변이 있지도 않은 선택적 내향인인 나에게는 너무 고통스러운 시간이다.


모두가 지쳐갈 때쯤 ‘팀장님’이 “이제 슬슬 들어가서 쉴까? 너무 오래 있었다”라고 운을 띄시면 다들 쭈뼛쭈뼛 자리에서 일어나고 우르르 다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헤어진다.


다 따로따로 나왔지만, 동시에 돌아가는….. 매직….

두 시간 가까이 밥을 먹었지만, 허기가 진 매직…….


이렇게 기를 다- 빨린 채로 돌아오게 되면 피로가 밀려오면서 다시 잠이 솔솔 온다.

내가 과연 밥을 먹고 온 게 맞나, 눈칫밥만 먹고 온 건 아닌가.

분명, 하하 호호 웃으면서 수다를 떨었던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지치지?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느끼는 퇴근 후 회식의 스트레스를, 아마 승무원들은 조식 뷔페에서 느끼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아무도 마주치지 않고 레스토랑에 입성하면 구석 자리에 등을 지고 앉아 조용히 , 그리고 빠르게 배를 채우고 올라가게 된다.

다시 담으러 왔다 갔다 하지 않으려고 한 번에 많이 담아 와 다 먹고 바로 올라간다.



그리고, 그렇게 아무도 마주치지 않고 밥을 배불리 먹고 올라온 날은 뭔가 운이 좋게 하루를 시작한 기분이다.


‘ 기 안 빨리고 내 체력과 허기를 다 보충하고 돌아온 행운의 날’


혼밥 한 번 한 거 가지고, 의미부여 한번 거창하다.


불평불만과 의미부여가 좀 길었지만, 진짜로 내가 원하는 것은 사실! 조식을 제공해주는 호텔이 더더 많아지면 좋겠다는 것이다.


밥심으로 일하는 우리들을 위해서, 더 많은 호텔에서 따끈하고 신선한 식사를 먹고 싶다!!

무료로 주는 일용한 양식이 있는데 그깟 눈칫밥이 대수랴!!!!

(정말….???)


이제는 어느 정도 그 생활이 10년 차를 넘어가서 인가 아니면 문화가 점점 변화되고 있어서인가.

글을 쓰면서 복기할 때는 그 눈칫밥이 너무너무 싫었지만 밸런스 게임으로 누군가 나에게


‘하루 종일 방 안에서 굶기 vs 팀장님과 한 시간 식사하기’라고 묻는다면!!!

하, 안 되겠다.. 난 그냥 굶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허기보다 무서운 불편함.

10년이 지나도 사회생활은 쉽지 않다.



작가의 이전글 유니폼을 입고 출퇴근 한다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