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원의 출퇴근 길
한 달의 휴업 기간이 끝나고 또다시 9월부터는 출근이다.
6, 7월의 비행은 운이 좋게 주말 출근이 많아서 남편의 픽업 서비스를 몇 번 받았었는데 이번 달은 전부 평일 출근이라 걱정이 많이 앞선다.
출근이 걱정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를 들 수 있는데, 오늘은 출퇴근 때 겪는 여러 일들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한다.
유니폼 차림에 드르륵드르륵 소리가 나는 비행 가방을 끌고 가는 여자 사람은 눈에 띄기 마련이다. 각자 제 갈 길이 바빠 걸음을 서두르는 상황에서도 여행 가방이 굴러가는 소리를 들으면 누가 여행가나?하고 돌아보게 되고 거기에 유니폼까지 입고 있으면 호기심을 담은 시선이 꽤 오래 머무른다.
처음에는 대놓고 오래 머무는 시선들에 적잖이 당황해서 어디로든 숨고 싶었던 적이 많다.
생각해보니 승무원 준비생 시절에는 나도 우연히 출퇴근 중인 승무원을 보면 ‘살아있는 체험학습’ 느낌으로 저 승무원은 어느 항공사 승무원이겠구나 맞추어 보고 머리는 어떻게 묶었는지, 가방엔 어떤 악세서리를 달았는지 궁금해하면서 한참을 쳐다본 적이 많았다.
그때에 내가 건넸던 집요했던 시선은 마치 복수의 칼날을 갈고 돌아온 것처럼 다양한 눈으로 나를 스캔했다.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출근길은 대부분 여행객이나 항공업계 종사자가 많이 타는 공항행 버스이거나 공항철도여서인지 서로를 잘 의식하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김포공항으로 가는 출근길은 출근하는 직장인이나 등교하는 학생들의 시선을 한껏 받아야 할 때가 많아 출퇴근길 자체가 고역인 경우가 많다.
가뜩이나 정신없는 만원 버스에 내 가방을 욱여넣는 것부터가 민폐.
빈자리가 있어 평소처럼 재빨리 자리를 차지하고 앉으려다가도 유니폼을 입은 배려의 아이콘(?) 승무원으로서 대외적으로 사람들이 바라는 이미지에 맞게 “이쪽에 앉으세요”라고 양보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집 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일’의 시작인 것이다. ‘유니폼’에 갇혀 그때부터 회사 업무를 하듯 출근길부터 ‘비행모드’가 되어야 한다.
요즘엔 그런 경험이 많지 않은데, 입사 초반에 살던 집에서 공항을 가는 버스는 인천을 지나는 시내버스였다. 짐을 실을 공간도 따로 없어서 급정거에 가방이 굴러갈까 캐리어를 팔에 옭아메거나 발로 지지하며 가던 고단한 출퇴근길. 동네 주민분들이 이용하는 버스여서 주목도가 훨씬 높았었는데, 취업 준비를 하는 자녀를 둔 부모님들이 ‘요놈 잘 만났다!’ 하며 반짝이는 눈으로 옆자리에 앉아서 질문을 쏟아내실 때가 빈번히 있었다.
“우리 애가 승무원을 너-무 하고 싶다고 그렇게 난리인데, 영어 잘해야 하죠? 토익은 대충 몇 점 정도를 받아야 해요?”
“면접 볼 때 아가씨도 미용실 가고 그랬어?” 등등….
질문의 범위도 광범위한데다 용기있게 질문을 건네주시는 그 순간, 모두들 티 안 난다고 생각하겠지만 힐끔힐끔 나의 대답을 기다리는 눈치와 궁금해하는 모습, 주목받는 그 분위기가 느껴진다.
앞서 말했듯 유니폼을 입고 있고, 유니폼에 명찰까지 달려있는 상황에선 취업 강의에 나선 실무자처럼 최대한 친절히 대답을 해야만 했고, 그러다가 화들짝 놀라 “아유 고마워요. 나 내려야겠네!” 하고 가버리시기라도 하면…
혼자 남겨진 채 그 모든 뻘쭘함을 감내하며 얼른 이어폰을 다시 꽂고 휴대폰을 보며 공항으로 향해야 했다.
질문과 비슷한 빈도로 본인의 지인을 아느냐고 물어오는 경우도 꽤 많다. “내 친구 남편 후배가 거기 기장인데, 000 몰라요?” , “우리 조카가 거기 벌써 사무장인데, 같이 일한 적 없어요?” 같은 질문들.
안타깝게도 질문자의 지인을 알고 있는 단 한 번도 없었다.
흠흠, 혹시 나의 친구, 친척, 그리고 다리 걸쳐진 나의 지인들… 어디에서 제 이름을 거론하며 묻고 계신가요….??
멈추어주세요……..
하지만 이런 불편한 점 말고도 좋은 점도 있다. 솔직히 어느 출근길이 가벼울 수 있으며, 콧노래가 나올 수 있겠는가. 나 역시 조금은 지친 얼굴로 버스를 타러 가는 길이었던 것 같은데 동네 아주머니가 너무 밝은 얼굴로 지나가시면서 말을 건네주셨다. 묵직한 진심을 담아서.
“안전하게 재밌게 일하고 와요!!!!”
“감사합니다!!”
어찌 보면 이건 특혜다. 어느 직장인이 출근길에 모르는 이에게 이런 따뜻한 응원을 받을 수 있을까.
대외적인 이미지가 어쩌면 그 분에게 용기를 주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그냥 무시하며 지나치진 않겠지? 하는 좋은 이미지가 있다는 반증인 것 같아서 그것도 좋고 감사했다.
그리고 또 단지 내에서 놀던 어린이들도 생각난다.
아니 잊을 수 없다.
“오!! 누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다 처음 보는 친구들이었는데 다들 목소리 높여 인사해주었다.
그리고 내가 인사를 받아주자 신이 나서 방방거렸다.
“너 비행기 타 봤어? 난 타 봤는데!! “
“저 누난 스트레스누나야!! 너네 알아?”
그 친구한테는 아직 스튜어디스라는 단어는 무리였나보다….
확신에 찬 어린아이에 허세에 난 조용히 그 대화를 뒤로 하고 집으로 향했다.
근데, 그 말도 맞지. 스트레스 누나.
그다음부터는 스트레스가 쌓인 날에 자꾸 그 어린 남자아이 목소리가 들리면서 피식거리게 된다. 귀중한 에피소드다.
요즘에는 그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출퇴근 길에 얇은 겉옷을 입어 유니폼과 명찰을 가린 채 출근한다.
일이 특히나 힘들었던 퇴근길은 잔뜩 성이나 보이는 내 표정에 혹여 누군가 불만을 가질까 가방에 달린 명찰도 가방 속으로 넣어버리고 철저히 나를 감춘 채로 퇴근한다.
역에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도 황급히 에어팟을 끼고 눈을 감아버린다.
빨리 비행 모드에서 벗어나고 싶은 맘에.
그 에너지를 잘 아끼어 내가 일할 때 써야지 하는 맘으로.
체력을 늘려 친절의 총량을 늘려야겠다는 다짐도 늘 함께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하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내가 친절할수록 내 기쁨이 커지는 경험도 많으니까.
방전이 빨라지는 요즘, 친절의 총량을 늘이기 위해 체력 관리에도 힘쓰고있다.
이제 또 출근이다.
한 달간 쌓아둔 친절을 내가 아닌 남에게 베풀 시간.
잘 해내고 부디 덜 힘들길 바라본다.
“안전하고 재밌게 비행하는 스튜어디스(스트레스 아님) 누나”가 될 9월을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