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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랩 Oct 19. 2022

하루살이 오프날로 버티는 일주일


벌써 열흘 가까이를 쉬고 있는 중이다.

일반 직장인이 생각하기에 열흘을 연달아 쉬다니, 긴 연휴를 가지는 엄청 부러운 상황으로 보일 일이다.


보통의 직장인이라면 주어진 열흘 동안 국내 여행을 가거나 여건이 된다면 해외여행까지도 노려볼 수 있는 어마어마하게 길고 꿀 같은 휴식일 텐데.

나의 상황은 그렇지만은 않다.


오늘이 되어서 돌아보고 나니 열흘 째인 것이지, 나는 이 휴무를 매일 저녁 다섯 시 이후에 부여받았다.

‘하루씩’.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 추석 당일은 비행을 다녀와서 쉬는 날이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은 ‘중거리 대기’ 스케줄이 있다.

이 스케줄은 중거리, 혹은 단거리 노선 비행을 가는 것은 확정이고 그곳이 어디일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막연히 빈칸으로 비워져 있는 ‘rf(ready to flight)’와 달리 ‘비행’을 한다는 사실은 확정된 스케줄인 셈이다. 단지, 목적지를 모를 뿐.


그래서 온 가족이 모인 추석날. 나는 30분에 한 번씩(아니 더 자주) 회사 사이트에 들어가서 스케줄이 들어오진 않았나 확인했다.

만약 들어온 스케줄이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하는 스케줄이라면 ‘비행 준비’를 위해 본가로 돌아갈 생각으로 가족들에게도 양해를 구해 놓았다.


출근 때 입고 갈 유니폼을 다 다려두고 손톱도 새로 매니큐어를 발라두고 친정에 왔다.

명절이라고 다 참여하지 못하는 직업 특성상,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이모들 친척동생들이기 때문에 최대한 오래 있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음날 스케줄이 정해지지 않아서 집에서 먼 시댁은 올 해에 찾아뵙지 못했다.)


맛있는 명절 음식을 먹고 나니 노곤해져서 원래 내가 쓰던 침대에서 잠을 청하려던 때, 또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회사 사이트에 들어갔다.

‘앗’ 스케줄이 확정된 코드가 사라지고 빈칸으로 스케줄이 변경되어있었다.

빈칸으로 변경된 스케줄 역시 다른 스케줄이 들어올 수 있지만 ‘오프’가 들어올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갑자기 신이 났다.

‘이거 이러다가 내일 쉬는 거 아니야?’


그렇게 희망 회로를 돌리기를 삼십 분(잠은 궁금해서 잘 수 없었다). 정말 명절 선물처럼 오프가 나왔다.

오후 다섯 시쯤이다.


그 이후로 3일을 매일, 하루 종일 스케줄이 들어왔나 들어갔다 나왔다 확인하고 저녁 대여섯 시쯤 휴무를 나타내는 ‘do’ 코드가 뜨면 안도하고 기분이 좋아지는 생활을 열흘째 하고 있다.

열흘이 다 빈칸이었다가 변한 것은 아니고 그중 3일은 애초에 스케줄에 부여된 휴무일도 포함되어 있긴 했다.

그렇게 정해진 휴무날 전에는 회사 사이트에 수시로 들어갈 일도 없고, 미리 약속을 정해둘 수도 있지만 다음날 어디로 불려 갈지 모르는 빈칸 상황에서는 전날에 말 그대로 ‘ready to flight’ 상태로 조마조마하게 내일의 운명을 기다리는 하루를 보낸다.


사람이란 게 참 간사해서, ‘제발 쉬기만 하면 너무 좋겠다’ 싶다가도 이제 내 스케줄대로 출근할 때가 되니 내가 오래 쉰 게 맞나 싶게 허무한 기분이 든다.

하루의 절반은 무계획, 불안 상태로 내일 어딜 갈지 몰라 불안정한 상태로 하루를 허비하고 만 기분이 들어서.


“아니 좀 일찍 알려주면 안 돼? 어차피 쉬게 해 줄 거면서 7시까지 굳이 굳이 기다려서 주는 건 뭐야! 하루 종일 대기조에 뭐 약속도 못 잡고! 이 밤에 연락해서 당장 내일 만나자는 친구가 어디에 있냔 말이야!!”

라는 속사포 불만이 우다다다 쏟아져 나온다.


열정이 넘치고 체력이 빵빵하던 이십 대 때에는 이렇게 갑작스럽게 생긴 오프가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었다. ‘되는 사람 아무나 나와! 내가 한국에 있다고! 나를 만나 주란 말이야! ‘의 맘이었다.

그때만 해도 법정 휴무일인 8일이 휴일의 전부일만큼 바쁘고, 한 달의 비행시간이 90 시간이 넘는 고된 비행의 연속이어서 한국에 발 붙이고 있는 날보다 비행기 위에 있는 날이 더 많았다.

또 ‘친구’ ‘술’ ‘놀기’가 가장 중요하던 때여서 ‘대학교 동기 채팅방’ ‘회사 입사 교육 단체방’ ‘전 팀원 소그룹 방’에 다 연락을 돌려서


“나 갑자기 쉬게 됐는데 내일 시간 되는 사람. 내가 너네 퇴근 끝나고 갈게. 얼굴 좀 보자.” 하고 정말 하루만 사는 하루살이같이, 불꽃을 향해 돌진하는 불나방 같이 그 하루를 보냈던 때가 있었는데,

어느덧 30대 중반이 된 지금의 나는..?

여전히 친구들을 보고 싶은 맘이 굴뚝같고, 서울에서 열리는 ‘팝업 행사’ ‘신상 카페’들을 가고 싶은 맘이 넘쳐나지만 ‘당장 그다음 날 또 어디로 가게 될지, 얼마나 힘든 노선일지도 모르는데 집에서 쉬어야지. 언제 또 이렇게 쉬겠어’ 하는 맘이 더 크다.


가만히 앉아 책을 보거나, 일이 바빠서 미뤄두었던 집안 청소를 하면서 내가 있는 공간을 좀 편하게 만들고 그곳에서 쉬는 일을 한다. 그리고 언제 급히 써야 할지 모를 체력을 비축하게 된다.

그리고 그 안에서의 만족감과 여유를 느낄 줄 아는 내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돌이켜보니 더 이번 열흘이 아쉬웠던 것 같다.

결론적으로는 열흘이나 쉬었는데, 그다음 날을 예측할 수 없어서 ‘체력 비축’ ‘쉼’ ‘휴식’을 하겠다고 방구석에서 스케줄을 확인하며 보냈던 시간에 그래도 한 번은 어딘가를 나가볼 수 있고 친구 얼굴이라도 한 번 더 볼 수 있는 날이었는데.. 이 좋은 계절 이 아쉬운 휴무날을 그냥 집에서만 보낸 것 같아서.


섣불리 약속을 잡을 수 없고, 당장 내일 내가 출근하는 곳이 어디인지 예측할 수 없는 ‘하루살이’ 인생.

이 패턴을 내 맘대로 규칙적으로 바꾸는 것은 내가 할 수 없는 영역의 일이다.

하지만, 나이와 체력에 맞게 그 ‘하루’를 가꾸고 돌보는 건 내 몫이다. 돌아보니 이번 열흘은 아쉬움이 크지만 다음에 또 찾아올 내 ‘하루’는 컨디션이 좋다면 조금 무리해서 친구와 맛있는 점심을 먹어보고 싶다. 오늘 갑자기 쉬게 됐는데 나랑 같이 놀래? 하고 먼저 손을 내밀고 싶고, 또 기꺼이 즉흥적인 만남에 응해준 소중한 친구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욕심쟁이에 만족을 모르는 나는 이렇게 또 보너스처럼 추가될 ‘오프’를 꿈꾼다.

‘하루살이’어도 좋으니, 역시 갑자기 예상 못한 곳으로 일하러 가는 것보다는 쉬는 게 최고니까.

설령 그 하루가 허무하고 심심하게 끝나버렸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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