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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랩 Nov 16. 2022

엄마가 승무원인 승무원

우리 엄마는 내 선배님


우리집 송여사는 내 선배님이다.

그러니까, 엄마도 승무원이었다라는 것이다.


물론, 회사를 그만두신 지 20년이 가까워오지만...

같은 회사에서 일한 적 있는 엄마를 두었다는 것은 엄청난 이야기 거리이자, 말이 잘 통하는 가장 친밀한 관계를 가족으로 두고 있다는 것이기도하다.


'엄마인 승무원'은 엄청나게 많지만 '엄마가 승무원'인 승무원은 사실 흔하지 않으니까.

82년에 입사한 엄마와 2011년에 입사한 딸.


엄마를 보면서 자란 내가 "나도 승무원하고 싶다" 라고 말했을 때에 엄마는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 라는 말을 했다.


그도 그럴것이, 어릴 때에 비행이 끝난 뒤 집에 온 엄마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대부분 누워있는 모습이다. 누워있거나 많이 지쳐보이는 모습.

엄마가 어떤 일을 하는 것인지, 왜 자주 집에 없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던 나로서는 반가운 엄마가 늘 힘들어보이는 게 속상했던 것 같다.


제법 큰 다음에는 그게 엄마한테 얼마나 큰 상처가 될지 대충 짐작한듯 못난 맘을 담아

"나는 절대 승무원은 안 해. 나는 내 아이랑 맨날 맨날 놀아주는 다른 엄마들 같이 살거야."

라고 말했었다.


와우, 정말 지독히도 못났네.....

그렇게 못나서 이렇게 엄마랑 똑같은 일을 하고 있나보다.하하하하. (엄마 내가 너무 미안해. 잘못했어.)


입사를 해보니, 엄마 말은 꾸밈없이 진실이었고 일은 겉에서 보는 것처럼 화려하다기보다 고되고 힘든 일이 많았다.

이제 막상 승무원이 되어서인지, 본인이 97년 찾아온 IMF로 본인의 결정이 아닌 회사의 결정으로 퇴사를 하게 되어서인지, 엄마는 힘들어하는 날 보며 "막상 회사 나와봐라. 얼마나 또 비행이 하고 싶은 줄 알아?" 라며 말을 쏙 바꾸었다.



나는 승무원의 자녀라는 독특한 아이덴티티 덕분에, 내 사정을 아는 '엄마가 된 동료'들에게 종종 상담을 해주곤한다.

'엄마'의 입장인 그들에겐 '승무원 자녀'인 입장이 가장 궁금할테니까.

매번 아이를 두고 비행을 나올 때마다 생기는 속상함과 일을 지속해야할지에 대한 갈등 속에서 내 의견이 궁금한 경우가 많나보다.


나는 결혼은 했지만 아직 자녀가 없다. 그래서, 자꾸 어렸을 때 엄마가 보고싶었던, 엄마를 그리워했던 그 시절의 나만 한없이 가여워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우리 엄마를 제일 자랑스러워하고, 닮고싶어하던 그 시절의 나를 꺼내어 동료들을 안심시키기도 한다.


이제는 어느새 11년차 승무원이 되어 총 12년을 일한 엄마와 엇비슷한 위치에 올라와있다.

시스템도 많이 달라지고, 사내 분위기도, 사람들이 말하던 '여자 군대' 문화도 사라지고 달라졌다.

엄마는 가끔 내가 힘들어서 혹은 재밌어서 건네는 비행 이야기를 누구보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듣는다.


가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엄마나 가족에게 '비행 이야기'를 털어놔도 일반 직장 환경과 너무 다르기 때문에 설명하고 이해시키다가 본론을 말할 때엔 김이 빠지거나, 열심히- 설명했는데 전혀 공감을 얻지 못해서 답답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래서일까? 승무원 친구들이랑 만나면 이야기의 7할은 비행 이야기다. 서로 어떤 비행에서 어떤 사람을 만났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침 튀기며 썰 잔치가 열린다.)


반면에 나는 내 이야기를 척하면 탁 하고 알아듣고 누구보다 공감해주는 엄마가 곁에 있다.

가끔은 뭔 옛날 옛적 라떼 이야기를 꺼내면서, "야야, 그건 힘든 것도 아니야. 엄마 때는 서비스 끝나고 한복으로 갈아입었다니까. 그 아리랑 카트 있지? (없어짐^^) 그거 나가면 사람들이 다 벌떼 같이 뭐 달라 뭐 달라"


시작되면 끝이 안 보이는 라떼 이야기가 시작되거나 지금 관점으로 보면 너무 부러운 이야기도 해주신다.


"우리 때는 너무 많이 시키면 막 큰 소리로 손님들한테 손들라고 주문받았어. 콜라 드실 분? 이렇게 ㅎㅎ"


거짓말로 밖에 들리지 않는 지금과는 너무 다른 옛날 옛적 이야기.


아직은 "승무원의 딸" "직업이 승무원" 인 자아만 있지만 나도 언젠가 "승무원 엄마"가 되면 그 때 엄마 비행가지 말라고 가방을 붙들고 울고,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엄마를 속상하게 했던 그 때가 더더 미안해질까.

엄마의 맘을 이해하며, 그럼에도 일을 이어가던 엄마를 대단하다고 생각할까.

아직도 문득 눈 뜨면 무서운 할아버지가 있는 친가집에 옮겨져서 깬 억울함과 배신감이 떠오를 때가 있는데 내 아이를 다른 곳에 맡기고 일을 가면 그 맘이 좀 퇴색될까.


모든 게 미궁이다.

그 시절에 나는 엄마를 많이 자랑스러워했으면서도, 엄마랑 떨어지는 게 너무 싫어서 매일 매일 외로워하고 슬퍼했던 것 같다.

'엄마와 함께하는 하나둘셋 체조' (요즘도 있으려나...), '녹색 어머니회에 엄마가 오기'가 가장 큰 소원이었던 어린 시절의 나를 꾸짖게 될까.

모르겠다.


예전 기억을 떠올리면 그 때 그렇게 속상하고 억울했던 나보다 지금의 내 나이이거나 그보다도 어렸을 엄마의 모습이 더 그려지면서 맘이 무겁다. 이제 나도 "너도 너 닮은 딸 한 번 낳아 길러봐!" 의 저주에 보답할 시기가 온 것인가...

내가 승무원이라서, 또 공감 능력이 매우 뛰어난 "f"형 인간이라 벌써 두렵고 무섭다.

그것 또한 과정이겠지. 삶을 살아내고 제 나이에 맞는 감정들을 겪어내는.

늘 걱정만 많아서 문제라니까.... 그래, 미리 걱정말자.

아직은 '엄마 딸'이기만 한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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