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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랩 Nov 09. 2022

승무원 부인 두니까 어때???

길고 긴 코로나 이후, 남편 데리고 여행 가기.


나와 남편은 2019년 겨울에 지인 소개로 만나게 되었다.

코로나가 다가올지 전혀 예상 못한 채 연말 분위기의 각국을 누비며 바빴던 그때.

그리고 2020년이 되어 사귀게 된 우리에게 코로나가 찾아왔다.


데이트를 하는 내내 마스크를 착용했고, 막 연애를 시작한 우리가 애정을 담아준 서로의 사진엔 마스크 쓴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얼굴을 맞대고 '셀카'를 찍을 때에도 눈치를 봐서 살짝 마스크를 내리고 다시 올려 쓰는 그런 코로나 시대의 연애를 했다.


결혼도 마찬가지.

2020년 12월. 처음 만난 지 딱 364일이 되는 날. (아무 날도 아님 주의, 의미부여를 좋아하는 편)

우리는 결혼을 했다.


12월 한 달 동안 정부의 방역지침이 총 5번 바뀌었다.

2.5단계에서 1단계, 1.5단계, 2단계, 2.5단계였던가... 매일 예식장에 전화를 하고 청첩장을 누구에게 줘야 하나.

가족을 빼면 각각 부를 수 있는 친구가 6명인데 누굴 불러야 하지.

고민과 고통 속에서 우여곡절 끝에 식을 올리고 우리의 결혼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현재까지 코로나는 진행 중이다.


3년을 꽉 채운 연애부터 결혼 생활까지의 기간 동안 나는 휴업과 근무를 반복했다.

하늘길이 막혀 비행 근무 인원이 대폭 감소되어 2020년엔 일 년에 단 두 달만 일했을 정도다.

그러니 남편이 보기에 난 시간 많은 백수 여자 친구, 그리고 백수 부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시간이 많아 집에만 있으니 집안일은 내가 해야 할 것만 같고, 상대적으로 수입도 적어져 '위신'이 서지 않았다. 10년을 일하는 동안 겪어보지 못했던 '시간 부자'의 생활은 나의 '소비'역시 부추겼다.

배워보고 싶은 것이 있으면 '시간'이 생겼으니 배워보고 싶었으니까. 시간이 생기니 돈 쓸 일이 많아졌고 그러다 보니 자꾸 눈치가 보였다.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는데 "내가 일 다시 하면 그때는 달러도 벌어오고, 또 해외 가서 지금 올리브영에 파는 거 더 싸게 사 올 수도 있어" (맞다, 추잡했다. 인정한다.)라고 괜한 말을 꺼내기도 했다.


그러다 올 해부터 하늘길이 열리기 시작하고 한국 입국 시 필요했던 의무 pcr검사, 자가격리 등이 없어지면서 여행 수요가 늘기 시작했다.

나도 덩달아 바빠지게 되고 승무원다운 직장인다운 삶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우리도 여행을 갈 수 있게 되었다.

승무원에게 있어 가장 좋은 복지라고 하면 '직원 항공권'이다.

항공료의 10% 그리고 세금만 내면 되는 어마어마한 혜택이다.


하지만 '유상 승객'이 우선이기 때문에 승객이 예약을 하고 남는 좌석이 있는 경우 그 가격에 항공권을 예매할 수 있다.

요즘같이 항공편수가 많이 줄어들었을 때는 자리가 여유로운 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

사실 내가 가장 가고 싶던 여행지는 '발리'였는데 예약률이 너무 높아 노릴 수 없게 되었고, 차선책으로 선택한 것이 '푸껫'이었다. 여름휴가를 올 해에 제대로 가지 못해서 남편에게는 '하기휴가'가 남아있었고 나도 10월 휴업상태에서 가기로 마음먹었다.


특히나 올 해는 10년 이상 근속 직원에게 제공하는 '비즈니스 항공권 2매'가 있었다.

와 살다 보니 이런 일이 다 있네 싶을 정도의 파격적인 혜택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운항 편수가 많지 않아 유상 승객 비율이 높고, 파격적인 혜택이니 만큼 직원들이 몰려서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


나 역시.... 그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한 사람이 되었다. (많이 속상했다. 사실)

하지만, 남편의 회사 일정도 중요했다. 직원 티켓 특성상 한국에 돌아오려 해도 예약이 꽉 차면 순위가 후순위로 밀려서 귀국 일정이 변경될 수도 있는 아찔한, 불안정한 상황이다. 남편은 이 점을 특히나 걱정했기 때문에 그래도 일반석에 자리가 여유로운 원래의 일정대로 가기로 했다. 욕심을 접고.


10년 동안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공항이지만 남편을 뒤에 두고 "은행? 은행은 저기" "체크인 내가 할게"

"라운지는 저 쪽이야" 한껏 잘난 척을 하면서 여행 기분을 내는 그 순간이 너무 좋았다.

그리고, 비즈니스 석은 탈 수 없었지만 라운지 이용이 가능하도록 배려해주셔서 라운지 이용도 해보고 또 직원 할인가로 지인 선물도 샀다.


"오빠 친구한테 꼭 자랑해. 와이프가 승무원이어서 44,000원이나 싸게 양주 산 거라고. 환율 방어한 거라고. 생색 실컷 내고 밥 얻어먹어 알았지?"


만난 지 3년 만에 마음껏 생색을 내는 내가 웃긴 건지, 아니면 여행길이 신난 건지 남편은 내내 표정이 좋았다.


그리고 대망에 돌아오는 날.

우리는 비즈니스를 타고 한국에 올 수 있었다.

현지 라운지에서 맥주를 마시고, 침대처럼 쫙 펼쳐지는 좌석에 누워 새벽 비행 동안 꿀잠을 자고 친절한 승무원이 제공해주는 아침 식사를 먹고 기분 좋게 한국에 왔다.


"여보, 나 사진 좀 찍어줘." 라며 기내잡지를 펴 드는 남편이 귀여웠다.


"와이프가 승무원이니까 완전 좋지??"


"응 완전 짱이다."


맞다. 3년 동안 열심히 체득한 대로 정해진 답을 영혼 넣어서 답할 줄 알만큼 남편은 성장해있었다.

이제, 지긋지긋한 코로나가 사라지고 다시 업무가 정상화되면 지금보다 수입은 늘고 내 위신은 설 지 모르겠지만 이번처럼 여유롭게 여행을 계획하고 놀러 갈 시간이 부족해질 것 같다.

꼬박꼬박 함께하던 크리스마스, 명절, 기념일을 못 챙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이번에 엄-청 생색을 내고 나서 보니 돈도 벌고 남편 좋은 데도 데려갈 수 있게 큰 소리 땅땅 칠 수 있는 내 자리, 내 일터가 얼마나 소중한지도 알게 됐다.


나중에 "승무원 며느리 두니까 좋으시죠?"라고 생색 한 번 내려 시부모님도 모시고 여행도 가고

"엄마가 승무원이니까 좋지?"라고 자부심 넘치게 으스대도록 아이가 생긴 후에도 일을 하고 싶다.

그래 아무래도 난 아직 이 일이 좋은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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